[포토] 나타샤가 출출이 우는 길상사

마가리로 간 백석을 기다리는 망부석 자야
김지호 | 입력 : 2011/11/29 [02:36]

      <단장의 가야금 멎으니 범종이 좋아서 응앙응앙 우는구나 >

      길상사는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시주 받아 법정 스님이 1997년 개원한 사찰이다.  

 
▲  낙엽 푹푹 날리는 날   ⓒ런던타임즈 LONDONTIMES

        백석의 연인 나타샤가
        출출이 우는 길상사로 가자. 

 
▲   마가리 찾아 가신 님  ⓒ런던타임즈 LONDONTIMES

        기별조차 없어도
        아니 오실 리 없다. 

 
▲  그리움 가슴에 묻고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천년을 기다리는
        망부석 여인 '자야'

 
▲  평생 이룬 터 시주하고   ⓒ런던타임즈 LONDONTIMES

        받아 든 법명 '길상화' 
        달랑 염주 한 벌

 
       누가 천억 재산이 아깝지 않았더냐고 물었더니,
       그 분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했단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육신의 재 마당에 뿌리고   ⓒ런던타임즈 LONDONTIMES

      혼백은 꽃씨에 담아
      화단에 심었다.

 
▲ 길상화도 법정 스님도 가고 없는 길상사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주 (이북 사투리):  출출이- 뱁새, 가마리- (산골자기) 오두막


 <백석과 자야>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난 김영한은 가세가 몰락하여 열여섯 살에 진향이라는 한양의 기생이 됐다. 뛰어난 미모에 춤과 노래뿐만 아니라 서예와 시, 그림 등에 뛰어나 명성이 자자했다. ‘삼천리 문학’에 수필을 발표하면서 알게 된 스승 신윤국의 도움으로 스물세 살에 동경유학을 떠난다.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하던 신윤국이 일제에 의해 함흥 감옥에 투옥되었다는 소식에 귀국하여 찾아가지만 면회할 수 없었다. 신윤국을 위해 지역유지들의 도움을 받고자 한 그녀는 함흥에서 다시 기생이 된다.

1912년 함북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본명: 백기행)은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1934년 조선일보사의 ‘여성’지의 편집을 맡는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둔 후, 함흥의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있었다. 그 때 교사들의 회식자리에서 만난 백석과 진향은 사랑에 빠진다. 백석은 그녀에게 “죽을 때까지 이별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백석은 기생들에게 예쁜 이름을 만들어 주곤 했는데, 진향에게는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자야가 서울로 가고, 백석이 조선축구학생연맹전에 선수 인솔 교사로 서울에 와서 그녀를 만났다. 백석이 학생들만 여관에 두고 자야의 집에서 지낸 일이 문제가 되자, 그는 미련없이 사표를 내고 서울로 와서 청진동, 명륜동 등에서 자야와 살림을 차리고 삼년간 지낸다. 이 시기에 백석은 ‘여성’지에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는데, 이 중에서 ‘바다’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그녀와의 사랑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들의 동거를 못마땅하게 여긴 백석의 부모님은 백석을 강제로 고향으로 데려가 결혼 시켜 버린다. 백석은 세 번씩이나 도망쳐 자야 품으로 돌아 오곤 했다. 그는 자야에게 함께 만주로 도망가자고 설득했으나, 그녀가 거절하자 만주로 가서 유랑한다. 이 후 그는 광복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녀는 서울에 남았다. 그리고는 죽을 때까지 서로 만날 수 없었다. 

96년 눈 나리는 겨울 백석이 죽고, 99년 늦가을 낙엽에 자야도 갔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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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ri 2012/11/17 [22:56] 수정 | 삭제
  • 백석 그리고 자야 그리고 길상사 법정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