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오후에 동네 목욕탕에 갔다. 마누라 죽고 홀애비가 되어 그런지 그새 박씨가 많이 수척해보였다. 갑자기 내 마음이 우울 모드가 되어 고해성사 하듯 하나하나 벗었더니 마침내 한 많은 알몸이 되었다.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가 많아 그런지, 몸에 때가 많아 그런지 아니면 내 물건이 시원찮아 그런지 나는 알몸이면 언제나 부끄럽다. 수척한 박씨 얼굴이 마음에 걸려 탕에 들어가려다 말고 이발을 할까 거울을 보니 아직 할 때가 멀었다.그러면 염색이라도 해야지 하고 다시 거울을 보니 그것도 아직 때가 멀었다. 털레털레 목용탕 안으로 들어갔다. 주말 오후라 그런지 한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 쓰다 버린 1회용 면도기를 주워서 뜨거운 물에 두어번 헹구고 면도를 하니 텁수룩했던 내 꼴이 영 딴 사람처럼 말끔해졌다. 내 마음도 1회용 면도기로 말끔하게 밀어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덕지덕지 때가 쩔은 내 마음을 싹 밀어버리고 태연하게 다니면 글쎄, 누가 알까. 그때 박씨가 발가벗고 들어왔다. 간이 청소를 하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부탁도 안했는데, 다짜고짜 내 등을 밀기 시작했다. 그리움과 외로움이 켜켜이 쌓여 그런지 나 몰래 그리움과 외로움을 밀고 있었다. 내 등을 자기 등처럼 하염없이 밀고 있었다. 박씨 눈에 눈물이 흐르는지 나는 몰랐고 내 눈에 눈물이 흐르는지 박씨도 몰랐다.(2008. 9. 20)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저작권자 ⓒ London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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