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목욕탕 이발소 박씨(2)

송현 시인이 본 아름다운 세상(6)
송현(시인. 본사 주필) | 입력 : 2008/10/17 [12:17]
▲     ©브레이크뉴스
(시)
 
가을비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오후에 동네 목욕탕에 갔다.
마누라 죽고 홀애비가 되어 그런지
그새 박씨가 많이 수척해보였다.
갑자기 내 마음이 우울 모드가 되어
고해성사 하듯 하나하나 벗었더니
마침내 한 많은 알몸이 되었다.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가 많아 그런지,
몸에 때가 많아 그런지 아니면
내 물건이 시원찮아 그런지
나는 알몸이면 언제나 부끄럽다.
수척한 박씨 얼굴이 마음에 걸려
탕에 들어가려다 말고 이발을 할까 
거울을 보니 아직 할 때가 멀었다.그러면
염색이라도 해야지 하고
다시 거울을 보니 그것도 아직 때가 멀었다.
털레털레 목용탕 안으로 들어갔다.
주말 오후라 그런지 한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 쓰다 버린 1회용 면도기를 주워서
뜨거운 물에 두어번 헹구고 면도를 하니
텁수룩했던 내 꼴이 영 딴 사람처럼 말끔해졌다.
내 마음도 1회용 면도기로 말끔하게
밀어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덕지덕지 때가 쩔은 내 마음을
싹 밀어버리고 태연하게 다니면 글쎄, 누가 알까.
그때 박씨가 발가벗고 들어왔다.
간이 청소를 하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부탁도 안했는데, 다짜고짜 내 등을 밀기 시작했다.
그리움과 외로움이 켜켜이 쌓여 그런지
나 몰래 그리움과 외로움을 밀고 있었다.
내 등을 자기 등처럼 하염없이 밀고 있었다.
박씨 눈에 눈물이 흐르는지 나는 몰랐고
내 눈에 눈물이 흐르는지 박씨도 몰랐다.(2008.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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