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행 기차에서 만난 무명가수

송현 시인이 본 아름다운 세상(5)
송현(시인. 본사 주필) | 입력 : 2008/10/16 [14:00]



▲     송현(시인. 본사 주필) © 브레이크뉴스
수원에 볼 일이 있어 지하철 5호선 신길역에서 내려 천안(병점)행 열차로 갈아탔다. 마침 차 안에는 오십대 초반의 아저씨가 낚시용 보조 의자에 앉아 앰프 기타를 들고 육성으로 자기 소개를 하는 중이었다. 충남 청양군 선양면 사람인데 서울역과 영등포역의 노숙자를 돕기 위해서 열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하는 게 좀 시원찮더라도 노래 끝나면 박수도 좀 보내주고 백원 짜리 하나 정도 보태 달라고 했다. 그는 눈을 지긋이 감고 열창을 하였다. 아저씨가 부른 노래는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가사도 마음에 들었고 곡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누가 부른 노래이며 곡명이 무엇인지 참 궁금했다. 

그의 노래가 오랜만에 내 가슴을 애잔하게 적셨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나는 손뼉을 마음껏 쳤다. 차 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은 아무도 손뼉을 치지 않는데 나 혼자만 손뼉을 쳤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빈 박카스 통을 들고 사람들 앞을 지나갔다. 내가 보기에는 너댓명이 동전을 넣는 것 같았다. 마침내 내 앞에 아저씨가 왔다. 나는 천원 짜리 한 장을 드렸다. 그러자 아저씨는 내가 유일하게 손뼉을 쳤고 천원 짜리 한 장을 내 놓는데 고맙다고 굽신 절을 하였다. 그 순간 나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노래 잘 들었습니다. 근데 조금 전에 부른 노래 제목이 뭡니까?”

“아아, 어르신, 그 노래가 마음에 들었습니까?”

“예, 아주 마음에 들었고, 노래를 참 잘 하셨습니다.”

“그 노래 부른 가수가 누굽니까?”

“이 태호의 신곡 "버팀목"입니다. 저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나는 얼른 메모지를 꺼내서 노래 제목과 가수 이름을 적어두었다. 

아저씨는 열차 안을 한 바퀴 돌고는 짐을 챙겨서 다음 역에서 내리든지 다음 칸으로 이동할 눈치였다. 아저씨가 만약 다음 역에 내리면 어쩌나 하고 아저씨 동태를 살펴보았더니 다음 역에 내리지 않고 다음 칸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제사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짐을 들고 아저씨를 따라 다음 칸으로 갔다. 아저씨는 아까처럼 양쪽 출입문 가운데 쯤에 보조 의자를 내리고 전을 폈다. 이번에는 아저씨 노래를 아까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듣고 싶었다. 아저씨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가 섰다. 가방은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짐을 들고 한손으로는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아저씨 노래를 들을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아저씨는 거기서도 보조용 의자에 앉은 뒤 앰프를 켜고 노래할 채비를 하였다. 

아까처럼 자기 소개와 차 안에서 노래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는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노래 시작하기 전에 날리는 맨트 내용으로 짐작컨대 한 두곡 부를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아저씨의 노래를 여러 곡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첫 곡으로 베사메무초를 불렀다. 첫 노래가를 끝난 뒤에 나 혼자만 박수를 보내자 다른 사람들에게도 박수를 좀 보내라고 주문을 하자 몇 사람이 손뼉을 쳤다. 그 다음에는 “안녕” “당신” “마지막 잎새”를 불렀다. 그 다음에 “자옥아”와 “그 겨울의 찻집”을 불렀다. 아저씨가 노래를 열창을 한데 감동한 사람들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 빈 박카스 통에 동전을 넣어주었다. 그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내가 제일 열광적으로 손뼉을 쳐 그랬는지 아니면 내 차림새가 좀 튀어 그랬는지 나를 눈여겨보는 듯 했다. 

만약 저 아저씨가 좋은 무대에서 좋은 마이크 앞에서 노래하면 훨씬 더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저씨도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제대로 공부를 했다면 저런 훌륭한 재능을 마음 껏 발휘하여 대성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니 내 마음이 아팠다. 노래를 여러 곡 부른 뒤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빈 박카스통을 들고 손님들 앞을 한번 돌았다. 내 앞으로 왔다. 나는 아까는 노래 한곡 듣고 천원짜리 한 장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노래를 여러 곡 들었으니 만 원 쯤 주고 싶었다. 그런데 만원이 아까워서는 아닌데, 주위 사람들이 혹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되어서 오천원짜리를 주었다.

“아이구 어르신! 아까 저 칸에서도 돈을 주셔놓고 또 이렇게 많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노래를 너무너무 잘 부르십니다. ”

이번에는 여러 사람들 동전이나 천원 짜리를 넣어주는 것 같았다. 아저씨가 다음 칸으로 가지 않고 다시 보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더 하겠다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어르신, 얼굴도 잘 생기시고, 멋집니다. 가수 누구 좋아하십니까? 한곡 신청하십시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아까 부른 버팀목 한 번 더 듣고 싶습니다.”

“아아, 이태호의 버팀목? 저도 그 노래 배운지 얼마 되지 않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아저씨는 아까보다 더 열창을 하였다. 그의 노래가 끝난 뒤에 나는 더 크게 손뼉을 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환호성을 지르자 저쪽에 있던 여고생 몇 명이 따라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 바람에 열차 안은 작은 음악회를 하는 분위기처럼 되었다. 아저씨는 두어 곡 더 부른 뒤에 나를 보고 물었다.

“멋장이 어르신, 가수 누구 좋아하십니까?”

“조 용필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어르신을 위해서 제가 노래 한곡 선물하겠습니다. ”상처“를 불러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는 눈을 감고 전주를 시작하면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감정을 잡는 듯하고는 “상처”를 불렀다. 아저씨의 연륜과 인생 역정 때문인지 그 노래 가사가 담고 있는 절절함이 고대로 노래에 묻어 나왔다. 어느 새 차가 수원역을 지났다. 나는 다음역이면 내려야 한다. 미리 내릴 준비를 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말했다.

“어르신, 다음에 내리시나봐요?

”예. 세류역에서 내립니다.“

“어르신,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목을 잡았다.

“오늘 참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아저씨께서 노래를 정말 잘 하십니다. 앞으로 목 관리 잘하시고,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어르신, 참 멋지십니다. 어르신께서도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수원 볼일만 없었더라면 천안 까지 따라가면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 머릿수를 하나 채워서 아저씨의 무대가 덜 쓸쓸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저씨가 나훈아의 “어메”를 나를 위해서 열창하는 것 같았다. 이미 아저씨 노래에서 받은 감동과 노래 가사가 담고 있는 애절한 정조에 취한 데다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 생각까지 나서 그런지 내 양 볼에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저씨의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기차가 세류역에 도착했다. 나는 차에서 내린 뒤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어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양볼에 흘러내린 눈물 때문에 돌아볼 수가 없었다. 차는 출발하였다. 차가 홈을 다 빠져 나간 뒤에도 나는 뒤 돌아보지 않고 돌비석처럼 그 차리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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