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목욕탕 이발소 박씨 이야기(1)

송현 시인이 본 아름다운 세상(4))
송현(시인·본사 주필) | 입력 : 2008/10/06 [14:40]
▲송현(시인·본사 주필)
▲     © 브레이크뉴스
나는 요즘도 동네 목욕탕에 다닌다.
목욕비 3천원도 마음에 들고
이발과 염색 다 해주고 만 이천원 받는 것도 마음에 든다.
우리 동네에 이런 목욕탕이 문 닫지 않고 있는 것이 참 좋다.

엔간한 손님들은
오래 전에 시설좋은 싸우나로
다 떨어져나갔고,
나 같은 촌놈들과
목욕비 아끼려는 가난한 사람들과
노인네들  때문에 문을 못 닫지 싶다.

나날이 치솟는 기름값을 당할 수가 없어
태양열 보일러로 바꾸는 공사 하느라고
한 달간 임시 휴업을 했다.
그 바람에 한 달간 나는
샤워만 하고 때 한번 제대로 못 밀어
내 등짝은 까칠까칠 해지고
내 머리카락은 많이 자랐고
흰머리가 많이 올라와 백발이 다 드러났다.

오늘 나는 목욕탕에 가자마자
벌거벗은채로 구내 이발소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런데 이발소 박씨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그 동안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 동안 중환자실에서 마누라 간호를 하였는데
지난 주에 죽어 장사를 지냈다고 했다.
이럴 때 뭐라고 위로해야 할까.
삼가 조의를 표한다고 할 수도 없고,
입으로만 안됐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참 난감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바람에 분위기가 더 어두워졌다.

박씨는 신문지로 만든 턱받이 가운을
내게 씌워놓고 평소대로 구석에 돌아서서
염색약을 타기 시작했다.
동성제약에서 만든 대한민국 최초의 머리 염색약
대한민국 염색약 중에서 가장 싼 양귀비병을 따서
플라스틱 컵에 붓고 천천히 비눗물을 젖고 있는
박씨의 뒷모습이 한없이 처량해 보였다.
나는 박씨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박씨는 양귀비와 비눗물을 섞어 천천히
저으면서 혼자말처럼 말했다.

--바보같은 여자였습니다. 밤낮 나보고 술 많이 마시지 마라, 담배 많이 태우지 마라. 고기 많이 먹지 마라고 걱정하면서 자기 몸 망가지는 줄 몰랐고 자기 몸은 조금도 챙길 줄 몰랐던 바보같은 여자였습니다. 숨 거두는 직전까지 내 몸 걱정만 하였습니다. 나같은  놈 만나 일생동안 아둥바둥 고생만 하다가 갔습니다.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납니다. 내가 죽일 놈입니다.
  
박씨 어깨가 움찟 움찟 들썩이더니
마침내 짐승처럼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가 하려던 어떤 위로의 말도 다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눈물로 하는 것이다.
내 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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