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정신 삼별초를 찾아서

그리운 금수강산 - 2
김지호 | 입력 : 2008/12/23 [12:52]
<나약함을 느낄 때는 남서풍을 타고 제주도로 가보자>

삼별초 최후의 장군 김통정 (金通精)과 고려 용사들의 불굴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제주도.

 
▲ 제주도 항파두리의 성내에 조성된 항몽 유적지     ©런던타임즈 londontimes
 
때는 바야흐로 700년 전 고려말 , 1271년 김통정 장군은 진도에서 삼별초를 이끈 배중손(裵仲孫) 장군이 여몽 연합 토벌군에 패배하여 전사하자 잔여부대를 이끌고 이곳 제주도로 입도하여 불사조처럼 재기하여 항몽의 기세를 올렸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진 항몽순의비     ©런던타임즈 londontimes
 
흉맹한 몽고군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맞섰던 삼별초.
그들은 고려의 무인답게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다 전원 옥쇄 하였다.

대한의 남아라면 어찌 옷깃을 여미고 그 정신을 가슴에 담지 않을 수 있으랴!
 
 
▲ 제주도에 입도한 김통정 장군과 삼별초 용사들.     ©런던타임즈 londontimes
 
비록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함께 하기로 맹세하자!
 
<이날의 함성은 파도소리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포효한다.>
 


▲ 항파두리에 토성을 쌓는 제주도민들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처음엔 서귀포 지역인 남쪽을 고려했지만 풍수지리와 지형을 잘 아는 제주도민들의 제안을 받아 들여 이곳을 택했다.

이들에겐 의()가 있었기에 제주도민들이 일심 단결하여 자발적으로 성을 쌓고 몽고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이곳 항파두리는 둘레에 깊은 계곡이 감싸고 있어 몽고의 기병을 저지하기에 알맞은 요충지였다.  시급히 성이 필요 하였기에 토성을 쌓았다. 


▲ 토성의 현재 모습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의를 품고 스러져간 이름 없는 용사들의 봉분이 되었구나...>
 

▲ 삼별초군을 공격하는 여몽연합군     ©런던타임즈 londontimes
 
160척의 전함을 거느린 고려의 장수 김방경(金方慶), 원나라 장수 흔도(忻都) ·홍다구(洪茶丘) 의 연합군이 공격해오자 김통정 장군을 비롯한 삼별초군은 결사 항전하였다.

<김방경의 충(忠)과 김통정의 의(義) - 엇갈린 선택 서글픈 대결>


▲ 최후의 일인까지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의로움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의(殉義). 몽고와 화친을 맺은 고려조정에게는 역도로 취급 받았으나 그 누가 이들의 의로운 뜻을 탓할 수 있을까?


▲ 몽고의 지배하에 신음하는 제주도민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제주도는 삼별초 이후 100년간 몽고의 지배를 받고 학정에 시달려야 했다. 몽고는 제주도를 직할시로 만들어 관리를 두고 군마(軍馬)를 기르며 남송과 일본을 공략하는 기지로 삼았다.
삼별초의 끈질긴 저항이 없었다면 일본은 몽고의 군마에 짓밟혔을 것이다.

제주도에는 악랄한 남자를 흔도 같은x 천방지축인 여자를 볼테(징기스칸의 부인) 같은x 이라는 욕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 최영 장군에 의해 토벌된 몽고인들     ©런던타임즈 londontimes
 
1368년 몽고의 원나라가 멸망하고도 한동안 제주도에서는 잔류 몽고인들이 횡포를 부리고 있었으나 1374년 최영 장군에 의해 토벌되었다.  


▲ 성터에 남아 있는 유물들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참혹했던 그 날을 증언하고 있다. 


▲ 성벽 밖에 있는 우물인 구시물     ©런던타임즈 londontimes
 
'구시'란 나무나 돌로 수로를 파서 만든 것을 뜻한다.  삼별초군이 식수로 사용했던 이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질 좋은 생수로 콜레라가 창궐 할 때도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었다고 한다.

김통정 장군이 성벽에서 뛰어 내린 발자국에서 물이 솟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 제주도의 역사를 들려 주신 김 어르신     ©런던타임즈 londontimes
 
공직생활에서 은퇴 하신 후 이곳을 관리하고 계시는 이분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 하여 이성계의 벼슬을 거부하고 1393년에 귀양 온 두문동제현(杜門洞諸賢)인 제주도 입도조 김해 김씨 김만희(金萬希)의 후손이다. <의로운 넋을 지키는 의로운 분의 자손>

1402년에 훈련도감으로 입도한 조선 왕조 초기 개국 공신으로 좌찬성에 오른 익화군(益和君) 김인찬(金仁贊)의 제3자 김검룡(金儉龍)을 비롯하여 삼절신(三節臣)이라 불리웠던 한천, 김만희(金萬希), 이미(李美)를 비롯하여 진계백(秦季伯), 김윤조(金胤祖), 김인충(金仁忠), 허손(許遜), 강영(康永), 김약시(金若時), 변세청(邊世淸) 등이 이때를 전후로 입도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훈학하며 생활하였고 이때부터 도래인에 의한 학문의 씨가 뿌려지며 제주도가 개화되면서 완전한 한반도의 일원이 된 것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대마도처럼 이 땅을 왜구들이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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