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그리운 아들딸의 대학시절

김병연 | 입력 : 2011/07/24 [14:16]
나는 1953년 8월 15일(음력 7월 6일)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고 교육입국과 과학입국의 사상을 갖고 있다.

여덟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큰집에서 30여 리 시골길을 걸어서 초등학교 3년을 다녔고, 집에서 4km 거리에 중학교가 있었지만 집에서 중학교를 다닐 수 없어 자취도 하고 하숙도 하고 가정교사도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를 졸업했고, 당시 중학교 진학률이 20%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목표의식이 뚜렷하고 교육열 강하신 아버님 때문에 한 달 정도 구두닦이도 했지만 주로 가정교사를 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이모님의 중매로 스물여덟 살 때 좋은 배필을 만났지만, 수년 간 계속된 우환으로 심적 물적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스물아홉 살에 낳은 딸과 서른한 살에 낳은 아들이 말썽 한 번 안 부리고 신통하게 공부를 잘해 딸은 한교원대학교를 합격했고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카이스트를 합격했다. 이때부터 나는 가난했지만 흐뭇했다. 한국교원대교의 등록금이 교육대학보다 저렴하고 딸이 학사과정 재학 중 과수석도 몇 번 했으며 아들은 카이스트 학사과정 재학 중 2000여만원의 장학금을 받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두 자식의 학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고 딸은 초등교사가 됐다. 

아들은 박사과정까지 카이스트에서 마치려 했으나 일본 교토대학으로부터 등록금은 물론 용돈까지 보장하겠다는 제의에 따라 일본유학(대학원과정)을 결심하고 공익근무를 지원하기 전에 교수님들과 상담한 결과, 미국에서도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으니 미국 이공계 5대 명문대학 중 MIT버클리대미시간대를 지원하라는 권유에 따라 미국유학을 결심하고 공익근무를 시작했다. 아들은 미국유학 후 카이스트 교수가 돼 과학입국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자식을 통해 교육입국과 과학입국에 이바지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반쪽이 났다. 의과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과학자보다 의사가 좋으니 의사가 되라고 권유함에 따라 인생의 진로를 고민한 아들은 의사가 돼 한국을 빛내보겠다고 했다. 

평생직장의 시대가 가고 평생직업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모든 국가가 의사는 경제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의술은 생명을 다루는 기술이기에 의사의 공급은 조절될 수밖에 없고, 교수정년이 65세인데 인간수명 100세 시대가 다가오고 있으며, 의료산업이 21세기의 각광받는 산업으로 등장했으니 아들의 장래를 위해 공과대학 교수보다 의사가 좋겠기에 만류할 수 없었다. 

4년제 대학의 우수인재들이 학사과정 졸업 후 몇 년씩 학원을 다녀 진학한다는 의학전문대학원, 남자 합격자의 58.2%가 30세 이상인 현실에서 학부졸업과 동시에 의학전문대학원을 진학하기는 어렵지만 병역을 필한 25세의 학부 졸업예정자로서 CHA의과학대 의학전문대학원을 합격하여 동 대학원 재학 중이다. 

전국을 강타한 의사열풍 속에 부자들만의 잔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의학전문대학원이지만, 전원 전액장학금(연간 약 2000만원) 지급전원 기숙사 입사의사고시 100% 합격 등을 자랑하는 CHA의과학대 의학전문대학원이기에 등록금(사립대 기준 연간 약 2000만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아들의 장래를 생각할 때 매우 기쁘다. 

아들딸의 대학시절엔 음악이 없어도 춤을 추고 월급을 타도 별로 쓸데가 없어 저축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아들의 생활비와 책값 등으로 연간 1000만원이나 들다 보니 저축이 어렵고 아들의 결혼 비용 장만 때문에 걱정이다. 

음악이 없어도 춤을 추고 월급을 타도 별로 쓸데가 없어 저축하는 재미가 쏠쏠했던 아들딸의 대학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하다. 

                                        ●시인/수필가 김병연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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