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본 한국 정치 상황

'공천 심사위' 위헌 소지 있어
런던타임즈 | 입력 : 2008/03/18 [11:51]
지난 해 영국에서 치러진 한인회장 선거를 둘러싼 갈등이 결국 영국법정에서 판가름이 났다.

 12일 영국의 고등법원이 내린 한인회장 직무정지 명령은 조태현 당선자측의 부정행위에 대한 재영 한인들의 따가운 시선뿐만 아니라 영국 법정 또한 이번 사안에 대해 상식을 벗어난 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여론의 방향과는 동떨어진 행동을 취해왔던 전직 한인회장과 신임 당선자의 상식에 대한 몰이해는 유럽 유일의 한인촌을 형성하고 있는 재영 한인사회의 위상 추락뿐만 아니라 한인 사회에 분란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었다. 

급기야 양분될 조짐을 드러낼 정도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한인사회가 이번 영국 법정의 판결로 발등의 불은 자연 진화되었다 할 것이다.
그러나 한인회장 선거를 둘러싼 한인사회의 갈등이 회장선거 때마다 재 점화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은 지적하고 있다.

박광규 영국 변호사는 런던타임즈와의 대담을 통해 한인사회의 시스템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1등 주의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의식구조가 크든 작든 자유 시민사회의 선거라는 시스템 속에서는 1등 이외에는 모두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고 1등의 지지자 이외에는 모두가 방관자가 되어버리는 문화라면 분명 뜯어고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박 변호사 또한 작은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는 재영 한인사회의 경우 현재 한인회장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력을 견제하고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선출직 이사제도가 필수라고 언급했다.
이것은 현대 의회민주주의의 발생지라 할 수 있는 영국의 정치시스템과 유사한 것으로 대통령 중심제보다 내각제를 선호하는 영국 풍토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한인사회 인사들은 권력지향이 강한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에서는 박광규 변호사의 주장이 현실성 없는 이상론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나 대다수 한인들은 그의 주장을 참신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자원 봉사기관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첨예하게 대립되면 대립될수록 그 폐해가 그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에게 되돌려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봉사자의 자세는 하루 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봉사에 대한 기본 자세를 교육받지 않고 경제력 만으로 봉사자의 자리를 탐내려 하는 것은 제사보다는 젯밥에 눈이 먼 경우라 할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선거를 통한 대표자의 선출은 그 선출된 자에 대한 견제를 담보하지 않으면 아무리 민주적 절차에 의해 뽑힌 대표자라 할지라도 그 역할을 소화해내기에 주위환경이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비단 재영 한인사회뿐만 아니라 한 국가 운영 시스템 속에서도 그 비근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이 통과되자 많은 국민들은 히스테리성 반응을 보인 것이 한국의 정치발전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을 이제는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국민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국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민주주의 시스템 운용상 필수 불가결한 브레이크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민들이 보여준 봉건적 사고방식은 결국 탄핵 폭풍을 이용한 권력자의 안하무인(眼下無人)식 통치를 부추긴 것이 사실이다.

지난 17대 한국 대선을 두고 세계 언론들의 비아냥거림은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낯부끄러운 것이지만 문맥상 두어 개만 만 예로 들겠다.

일본 닛케이-  “17일 대선 투표는 양극화를 확대시킨 노무현 정권에 대한 일벌백계의 성격이 강하다.”
12월 12일자 영국 파이년셜타임즈-“한국인들은 낡은 대통령(old-style president)을 뽑음으로써 정치 시계를 뒤로 되돌릴 준비를 하고 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면 민주주의 발전을 희생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들 세계 언론들은 ‘신생아’에 불과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목욕물과 함께 버려질 위기에 처한 점을 한결같이 집어낸바 있다.

결국 한국민들의 선택은 세계언론들이 예측한 대로 되었고 그 결과는 한국 총선에 치명타를 불러왔다.

지역주민의 대표를 뽑는 자리에 ‘공천심사위’라는 다분히 위헌소지가 있는 절차를 동원하여 민주주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

한 국가 시스템이 포플리즘에 영합한 ‘조자룡 헌 칼 쓰듯’ 하는 ‘공천심사위원장’이 좌지우지 한다면 이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 영국 한인사회로 돌아가보자.

박광규 변호사는 “영국의 경우 분명한 범법 사실이 확실한 범인을 체포했을 경우라도 국가 권력기관이 절차상 오류를 범했다면 사법기관은 이를 엄격하게 견제해온 것을 자랑스런 전통으로 삼고 있다.” 고 인터뷰 말미에 덧붙였다.

지난 한인회장 선거에 대해 영국 법정에서 재선거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그 공의 절반 이상은 법정투쟁도 마다하지 않고 끈질기게 정의를 부르짖은 박영근 후보에게 있다 할 것이다. 판결과 함께 박영근 후보의 재선거 불출마 선언은 그 동안 갈등과 불신으로 얼룩진 한인사회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영근씨의 찬사를 받아 마땅한 행동이 선뜻 박수갈채를 받기에는 주위 분위기가 명쾌하지 않은 안개를 피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박영근씨의 선대위장을 맡았던 모 신문 발행인은 자신의 신문을 통해 ‘재선거 당사자들의 동반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비록 그의 의도가 사심이 없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주장을 하기에 앞서 보다 본질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순서였음에도 민주주의 절차를 망각한 ‘한국식 공천 심사위원장’역할을 누구로부터 임명 받지 못한 채 단순히 발행인이라는 특권으로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런던타임즈 독자광장에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재영 연합회측은 현재의 계획(제2의 한인회 구성)을 밀고 나간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영국법정에서 박영근씨가 신청한 당선무효로 판결이 났기 때문에 ‘제2의 한인회 구성이 필요 없다.’라고 하는 것과 재영 연합한인회 측이 항변해왔던 ‘절대 박영근일병 구하기’가 아니라는 내용과는 서로 앞 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출마 당사자의 한 사람 이었던 김지호 현 런던타임즈 발행인은 지난 해말 동포언론인 [한인헤럴드] 기고 글에서 ‘해외 동포사회에서 항상 반복되는 선거 후유증을 종식시키기 위한 시스템 확립’을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해 ‘추락한 재영 한인사회의 위신을 박영근씨로 인해 회복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고 언급하고 ‘누가 한인회장이 되는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를 세계 동포사회에 모범이 되는 한인회 운영시스템을 구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 민주주의의 원산지로 가장 선진화된 정치 시스템을 운영하는 영국 땅에 살고 있는 재영 한인들이 이번 한인회장 선거 후유증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미래를 향한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다면 이는 해외 동포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 발전에 이바지하는 한 모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런던타임즈 박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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