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東 대탐험 ‘아랍의 어제와 오늘!’(1)

'아랍의 어제와 오늘'의 저자 소정현 기자의 기획 연재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입력 : 2008/04/30 [17:23]
▲중동고찰과 접근의 뉴페러다임은 종교를 건너뛰는 역사의 실증적 통찰이 엄격하며 정교하게 조합되어야 한다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소정현 기자의 [아랍의 어제와 오늘]을 브레이크 뉴스와 공동 연재를 시작한다. 이미 소정현 기자의 아랍관련 기사는 한국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세계 뉴스의 허브라 칭해지는 런던에서 가깝고도 먼 아랍관련 이야기를 소정현 본부장을 통해 들어본다.
런던타임즈 독자를 위한 특별 강의 또한 올 해 말쯤 런던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김상영(사건의 내막 편집국장 )과 소정현 기자와의 인터뷰로 런던타임즈 첫 연재를 대신한다.
-런던타임즈 편집부-
 
    '시사주간지 사건의 내막' 이 마련한 정해년! 기획특집에 이어 무자년까지 속개되고 있는 <中東 대탐험> '아랍의 어제와 오늘!’이 독자들의 비상한 주목과 열띤 호응 속에 인기리에 절찬 연재되고 있는 가운데 이제 막바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총60회)
  
세계문명 聖地로 막강한 영향력 여전
巨視的 微視的  입체적 실체파악 절실
 
▽ 고대에서 현대까지 중동 파노라마 대특집을 구상하고 집필하게 된 배경을 개괄적으로 말씀해 달라.

- 중동은 상시 헤드라인 뉴스메이커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극한 대립, 다국적군의 이라크 침공과 아프가니스탄 점령, 우리에게 너무 충격으로 새겨진 美 심장부를 강타한 9.11 사태, 그리고 이후 런던 테러를 위시 지구촌 도처의 크고 굵직한 테러 살상의 경악할 이면에는 회교국의 중핵 되는 아랍세계가 엄연히 포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대한민국 외교력의 부재를 고스란히 노정시킨 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한국을 인질로 잡고 국제사회를 농락하고 있는 것은 그 생생한 단적인 실례라 할 것입니다.
국제평화의 질서를 심대하게 훼손시키고 있는 중동 사태야말로 우리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긴급 현안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긴박한 국제정세의 주축인 중동 아랍세계의 포괄적 미시적 동시 접근이야말로 지식 정보를 넘어서는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공유할 수 있다는 확신 이상의 무엇이 저의 내면 세계를 적극 압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 웸(wam)社의 ‘이브라힘 알 아베드’ 사장    
▽  브레이크뉴스와 아랍에미레이트(uae) 국영통신사인 웸(wam)사와는 제휴 협력을 맺고 있지 않습니까? 
  
-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동행한 브레이크뉴스 문일석 대표께서는 wam(uae emirates news agency)의 ‘이브라힘 알 아베드’(ibrahim al abed) 사장과 기사 협력 교류협정을 맺었습니다. 이에 저희 브레이크뉴스에서는 웸사(www.wam.ae)의 주요 영문기사를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부여받게 된 셈이지요.
 
그리고 본의 아니게 웸사의 메인기사를 번역하고 뉴스화 하는 총괄책임을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사실, 부담스러워 했지만 스몰그룹으로 번역을 이끌면서 중동의 시각에서 투영한 제반 중동 外的 內的 요소들과 의제들을 신중하게 다루면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관점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에 언론인 패러다임으로 분산적 시각들을 통합적 관점으로 일명 승화시키고 싶은 욕구가 드세졌다고나 할까요. 중동에 관한 연구 성과나 간행물들이 관련 전공자들 위주로 펼쳐지고는 있지만, 마감 시간(데드라인)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뉴스 속성상 언론인들이 심도 깊게 다룬다는 것은 아마 역부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부득불 모험을 자원하게 되었습니다.
 
▽ ‘석유와 분쟁’을 배제하고서 중동의 지정학적 위상을 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시에 고대 중동이 인류사적 문명에 끼친 지대한 공로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 고대 중동의 역사와 문화가 인류사에 끼친 혜택은 자세히 살펴보면, 예상외로 광대 무궁함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너무 익히 알고 있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메소포타미아의 초승달 지역은 수메르,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페르시아의 4대문명이 발흥했던 거점입니다.
 
또 하나의 양대 축인 이집트 문명 역시 우리 인류에게 거대한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여타 지역권의 문명이 이들 양대 문명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여파는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여기에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기독교의 구약성경의 배경과 터전이 바로 고대 중동사와 필연적으로 밀착되어 있어 성서고고학 측면에서도 이의 신빙성과 입증에 결정적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서양문명의 원초 되는 그리스 문명을 이들이 적극 받아들이고 밀착 흡수했기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중세유럽에 이들 세계사적 유산들을 단절 없이 매개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요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탈레반 한국인질 억류는 회교권 愛憎에 눈뜨게 해
월드파워 중동연구 ‘창조적 접근해야’ 효과적 대응
 
▽ 초미의 관심사인 탈레반 인질 사태와 관련하여 어떤 시사점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요. 
 
▲탈레반의 기승과 회교벨트권의 묵시적 동조를 동시에 눈여겨 보아야   ©런던타임즈 londontimes
 -사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너무 요식적 측면이  과다하여 겨우 외신보도를 통해 매우 흐릿하게 알고 있는 피상적 인식이 절대 다수라 할 것입니다. 이제 봇물처럼 홍수를 이루고 있는 인질사태의 시시각각 보도를 통해 이전의 무관심은 급속도로 소멸된 것이지요.
이렇게 투명하시면 밑그림을 그리는데 별 무리가 없습니다. 반세기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정책에 있어 미국 외교는 석유라는 전략무기의 보고가 바로 중동임에도 불구하고 범아랍권에는 홀대정책을 줄기차게 펼친 반면, 여전히도 친이스라엘 정책이 불변하여 아랍권의 반목이 심화되어 온 것입니다.
 
거두절미하자면, 이에 대한 집단 대응이 9.11 사태로 응축된 것입니다. 이어 미국은 9.11 사태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의 은거지로 점찍은 아프가니스탄에 융단 폭격을 가하고 군대를 주둔시키며 친미 정부를 수립합니다. 여기에 강력하게 대응한 그룹이 우리 인질을 두  명이나 살해한 악동들이 바로 이 탈레반들입니다.
한국 또한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견한 입장이기에 미국과 동류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탈미를 외치며 현 정부의 전복을 항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탈레반들이 한국을 타깃으로 삼으면서 응징의 대상으로 선량한 한국인을 억류하고 있는 것은 고도의 전략적 산물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을 냉철 응시해야 얽히고설킨 인질 사태 장기화의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그나마 종식시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는 셈입니다. 
 
▲  9.11테러는 일명 종교 대리전 양상으로 비화되었다.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소편집위원께서는 ‘격동의 이스라엘 50년’의 저자이기도 한데, 중동사태의 역사성을 어떻게 소급하여 반추해 볼 수 있을까요.

-미리 앞서 말씀드리자면, 여기에는 종교를 건너뛰는 역사의 실증적 통찰이 엄격하며 정교하게 조합되어야 합니다. 종교적 시각으로 접근한다 하면, 일단 신뢰성의 문제를 거듭 거론하며 역사성이 희석되거나 부정되는 오류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논점인가 하면, 히브리 민족의 유일신 패러다임에서 유대교가 태동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후일 개신교의 원형 격이 되는 가톨릭이 형성되었으며, 아랍인들이 자신들의 독자성을 외골수적으로 설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절대적 정신적 지주인 회교와 코란이 유대교의 후폭풍 속에 있었다는 것은 이 분야 연구 식자라면 그 누구도 절대 부인하기 힘든 것입니다. 
 
이어, 쉽게 풀어 설명 드릴까 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주역의 하나인 아브라함은 이삭과 이스마엘 두 아들을 얻게 됩니다. 전자는 유대인 적자이고 후자는 이집트 출신 서자이지요. 이스마엘은 결국 버림받고 그의 모친과 함께 쫓겨나게 됩니다. 또한 이삭은 쌍둥이 야곱과 에서의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권이 치열했습니다.결국 에서는 장자권을 야곱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원명이 야곱임을 일반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열두 아들을 둔 야곱은 후일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꿉니다. 바야흐로 이스라엘민족과 아랍민족이 분기되는 역사적 연원을 맺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야곱의 11번째 되는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대신을 지냈으며, 모세시대에 이르러 이집트에 거주한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엑서더스를 벌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경의 대서사시인 출애굽기입니다. 출애굽 이후 이들 민족은 가나안땅 입성의 여정에 이르기까지 정복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진멸의 대상 민족들이 이스마엘과 에서의 후손들이었습니다.
 
특히 아랍세계에서 이스마엘의 존재는 상상을 뛰어넘는바, 이들 후손들이 부친의 프로필을 학습하게 될 때에 과연 유순하게 동거동락할 수 있을까요? 적대적 원수 관계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현대 중동사태의 비극은 이처럼 장구한 세월의 맥락에서 조망되어야 선명하고 투명하게 상세 해부가 용이하다 할 것입니다.
 
▽ 중동과 아랍세계를 결속시키는 구심체는 바로 회교로서, 이들 세계를 투시 가능하도록 하는 일명 dna가 아닐까요. 
▲ 중동 세계의 본질적 통찰에  창을 열어주는 이슬람교와 코란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마호메트가 창시한 회교는 현재 중동국가를 위시 아프리카와 구소련의 연방국가가 주축이 된 독립국가 연합(cis)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 걸쳐 광범위한 벨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강력한 오일달러를 배경삼아 미국과 유럽에도 그 세력권의 확장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특히 이들은 서방세계에 대립 투쟁하는 것을 성전(holy war)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비록 오도된 나름대로의 교조주의적 해석이겠지만 코란의 경배에서 그 신념체계를 갈급하고 있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엄연한 명제입니다. 이들이 최소 묵시적 심정적 동조를 넘어 경제적 종교적 결속력에 박차를 가한다면, 이들의 파괴력에 공포를 떨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에 어쩌면 대재앙으로 돌변하면서 임박했을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이들은 유일무이의 가치와 신조로서 코란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경직된 집단 사고와 공동체 의식은 어떤 일탈도 목숨을 거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부연하자면, 개인적  다양성이나 창의성조차 종교의 큰 틀에 배치된다 하면 묵살되거나 고립되기 십상으로서 집단 사보타지를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복장이나 언어, 成婚 풍습, ‘飮食과 接待’ 문화, 性文化를 아우르는 것으로서 실정법의 상위에 있는 이슬람 종교법 ‘샤리아(sharia)’가 굳건하게 서 있습니다.
물론 장점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경제적 사회적 약자 배려의 원칙, 높은 도덕성,  개인주의 왜소성 등은 우리 세태에 있어 적극 수용해야 할 값진 자산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슬람 세계의 공정한 통찰에 따른 객관적 실상 파악과 애정의 심화를 위해서는 불가불 마호메트와 코란의 결합체인 회교의 심층 해부가 선결요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구촌 굵직한 테러 反美 이스라엘 노골적 적대감
회교는 유대교 산물이라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어 

 
▲ 이스라엘과 미국은 부부와 같다는 메시지는 아랍에선 저주의 목소리이다.     ©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독자의 열띤 호응 속에 절찬 연재되고 있는 ‘아랍의 어제와 오늘'의 집필 지향점을 약술하신다면.
- 신년 초부터 집필에 들어간 본 연재 칼럼이 벌써 26회(현재 29회-편집자주)를 훌쩍 넘겼습니다. 전반전을 마무리한 셈이 되는데요. ‘아랍의 어제’에 해당되는 전반부는 주로 중동의 개괄적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주안점을 두어 왔습니다.
 
‘중동- 아랍- 이슬람’ 용어의 歷史的 고찰에서부터 이들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태동과 대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의 발흥과 쇠락, 아랍어의 연원과 특성, 이슬람의 月曆, 관혼상제, 음식문화 ’독특한 복장 관습’에 더하여 이슬람 음악과 예술양식, 과학세계와 문학과 철학, 경제와 고대교역까지 두루 조망하였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부문들은 여타 문화권에 비해 배타적이고 차별적 요소가 많아 선학습적 노력이 배양되지 되지 않으면, 상당한 오해와 편견과, 오만과 착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의외로 험난한 난코스가 될 수 있음에 노심초사해야 합니다. 이런 섹터들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고 개인적으로는 진통이 적지 않았음을 말씀드립니다.
이제, ‘아랍의 오늘’이라 할 수 있는 후반부 서두에서는 인류사적 공통의 유산 특히 유적지 탐방과 의의와 성과에 대해 심층 접근하려 합니다. 이어 서구 식민지 열강 시대에 민족주의 태동 및 독자성과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진통과 해산의 몸부림들을 생생하게 드려다 볼 것입니다. 회교와 기독교의 비교 대조에 있어서도 예민한 촉수를 터치하려 합니다. 석유와 테러로 공식화한 획일적 현대사의 인식 전환에도 공세적으로 임할 것입니다. 아랍국 간 외적 내적 결속과 갈등 역시 중점 고찰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 집필에 있어서의 난관이나 딜레마를 약술한다면 무엇입니까?

- 브레이크뉴스 지역본부장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집필시간까지 동일하게 의무적으로 할애해야 하기에 시간과의 혈투라 할 것입니다. 매주 전면 2페이지 분량을 마감 시간대에 맞춘다는 것은 마치 열차출발 시간에 가까스로 헐레벌떡 탑승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제 아무리 마감 시간이 임박했다손 치더라도 연재의 완성도를 절대 떨어뜨려서는 더욱 아니 될 이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제가 중동학이나 아랍학의 전공자가 아닌 이상 저널리스트의 입장에서 최대한 신중하면서도 완급을 조절하며 집필하는 것을 굳이 격식 있게 말하자면, 회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자평을 거듭하였습니다. 다행이라면 대학원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했기에 체크 포인트에 있어 분석의 틀과 도구에 대해 일정 트레이닝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다양한 시각의 자료 입수 어려움에 직면한 것이 늘 아쉬웠으며, 매번 논제 정립의 범주와 수위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또한 어떤 측면을 부각시켜야 할 것인지! 상시 마음을 조아리게 했습니다.
 
첨언하면, 고대의 부정확한 연대기 자료들을 어떻게 조합시킬지가 상당히 두통거리였습니다. 상상력으로 접근할 수도 없기에 입수된 자료를 반복 스크린하며, 비유적으로 고백 드리자면, 이를 토대로 인위적 사색에 강제 침몰되었다가 극적으로 구출되었다가 하는 양동 작전의 불청객이 시소게임처럼 연신 찾아왔습니다. 추후에 최종 연재분을 단행본으로 엮어 독자들에게 선보인다면 저의 부담스런 역할은 일단 종지부를 찍게 될 것입니다.

▽ 관련 자료가 많지는 않을 텐데 자료 수집은 어떻게 하십니까?

- 즉답보다는 이런 부분을 짤막하게 소견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미래 비평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말한 소유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접속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연신 실감합니다. 이런 정보 지식화 사회의 도래와 심화는 필연적으로 it산업의 만개와 함께 불가분의 관계를 정립하고 있기에 갇힌 지식 갇힌 정보는 그 수명을 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열린 지식 열린 정보는 무병장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전의 패러다임은 현장 지향적이며 현장 접근성이 보장되어야만 양질의 기사를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는 것은 아닐 것이기에 소수만이 정보를 생산하고 독점하고 유통했습니다. 하지만 이 카르텔이 철두철미 붕괴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터넷은 모든 사람에게 저비용 고효율을 담보하는 경이이자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또한 인터넷 문명의 수혜라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어디서든 접속하여 옥석을 가리면서 흩어진 정보를 탐색하고 시추하고 정제하여 완제품으로 내놓은 일은 즐거운 고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소정현 편집위원의 추후 계획이랄까 마지막으로 한 말씀. 
 
올해 2007년 한해는 꼬박 중동특집 연재에 매달려야 소기의 성과물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2006년에는 사이버 양극화 포럼을 70회까지 브레이크뉴스와 사건의 내막 공동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내년 2008년에는 중동의 알파와 오메가의 또 다른 주축 되는 ‘세계 속의 유대인’의 구상과 밑그림을 앞당겨 그려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조언과 성원을 정중하게 요청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금주부터 주 2회  '소정현 편집위원의 中東 대탐험' ‘아랍의 어제와 오늘!’ 를 런던타임즈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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