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月曆' 마호메트가 ‘太陰曆’ 확정

<기획특집> 中東 대탐험 ‘아랍의 어제와 오늘!’(7)
런던타임즈 LONDONTIMES | 입력 : 2008/07/26 [20:16]
 
소정현기자
▲ 중동의 이미지는 석유와 전쟁의 양대 이미지로만 생생하게 각인되어 온바, 중동의 획일적 사고관을 다채롭게 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 시점에 있다.
 

美國의 이라크 사태 개입에 가일층 상시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中東! 한시도 월드뉴스의 헤드라인을 벗어난 적이 없다. 특히 아랍국과 이스라엘간 세기의 반목과 갈등은 미국과 아랍국간 대리전 양상으로 비화된바, 회교와 기독교 대립 구도라는 종교전 양상으로까지 치닫으면서 증오와 테러의 불길을 거세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막대한 석유자원의 보고이면서 고대문명의 중핵을 이루었던 중동의 인식은 이렇듯 전쟁과 테러의 이미지로만 먹칠된 상태이다. 

이스라엘 현대사를 심층 조망한 ‘격동의 이스라엘 50년’ 著者이기도 한 소정현 편집위원은 중립적 시각 하에 중동의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제반 전 분야를 세밀 투시할 것이다. 독자 제현들의 적극적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편집자 주> 

 

    이슬람의 月曆

   마호메트가 메디나로 피신한 해를 ‘元年삼아’

   태양력에 10일 이상 짧아 매년 ‘상이한 新年’


   이슬람의 安息日

   이슬람 최대명절 ‘희생제’ 아브라함 시험기려

   유대교와 결별후 독자적인 안식일 ‘金曜日로’        

 
 


◇ 마호메트가 ‘태음력’ 전격도입

시간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날짜의 순서를 질서정연하게 설정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특히 천체(天體)의 주기적(週期的) 현상은 시간 단위의 척도가 된다. 그리고 주기현상에서 대체적으로 적용되는 뚜렷한 것은 밤낮이 바뀌는 것, 4계절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 달의 위상변화(位相變化) 등을 중점 거론할 수 있다.

지구는 자전(自轉)하면서 태양의 주위를 공전(公轉)하고, 달은 지구의 주위를 공전한다. 이 반영으로 태양의 일주운동은 하루(1일)를 구분하고 태양의 연주운동은 또 다른 한 해(1년)를 만든다. 이것이 태양력(太陽曆)의 반석이 된다. 한편 달의 주기운동에서 한 달(1개월)이 생긴다.

그런데 기본 주기를 무엇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역법이 달라진다. 기본 주기를 달(太陰)의 삭망(朔望)에 두었을 때, 이 역을 ‘태음력(太陰曆)’이라 하고, 해(太陽)의 천구상의 운행에 초점을 두었을 때는 이 역을 ‘태양력(太陽曆)’이라고 한다. 또 태음과 태양의 두 천체의 운행을 함께 고려한 것을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이라고 한다.
 
 
▲ 마호메트 출생일을 기념하는 ‘마울리드 앗 나비.’ 마호메트는 쿠레이쉬 부족으로 서기 57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과연 그렇다면 아랍의 이슬람 세계에서는 어떤 방식을 고수하여 왔을까. ‘히즈라력’이라 불리는 이슬람력(islamic calendar)! 원래 아라비아 지방에는 태음태양력이 혼용되었다. 그러나 이의 해석에 있어 정교한 법칙에 의존하기 보다는 신관(神官)의 손에 좌지우지 되어 종교적·정치적으로 제멋대로 남용되던 것을 마호메트가 전폐하여 순태음력으로 바꾸었다.

아랍어인 히즈라(hijrah)력의 원기(元期)는 ‘헤지라’(hegira-영어) 즉, 이슬람을 포교하던 즉 마호메트와 그의 추종자들이 메카로부터 메디나로 피신한 해의 아라비아력의 연초를 취하며, 율리우스력(서력)으로 622년 7월 16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이슬람교도는  이를 '성천(聖遷)'으로 번역한다.

오늘날 서유럽화한 이슬람 여러 나라에서는 서력과 병행된다. 서력과 히즈라력의 연도를 대략 측정하기 위한 공식은 다음과 같다. g(서력)=h(히즈라력)+622-h/33, h(히즈라력)=g(서력)-622+(g-622)/32 이다.

그런대 1년이 12개월 되는 히즈라력의 총 일수는 354일 8시간 48분으로, 29일의 짝수 달과 30일의 홀수 달, 가끔 짝수 달이면서도 30일이 되기도 하는 12월 등 총 12개 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12월이 그 어느 쪽이 되는 것은 법칙이 있어서 30년 중 30일의 경우가 11회, 29일이 19회 있다. 따라서 1년은 354일 또는 355일로 태양력에 비하여 10일 이상 짧으므로, 연초도 각 월도 계절과 점점 어긋나게 된다. 그러나 이 달력의 30년, 360개월은 1만 631일로, 실제의 360 삭망월(朔望月)에 대단히 가까우므로, 달에 대해서는 30년에 거의 완전히 일치한다.

이에 한주간의 아랍 용어를 간략히 알아본다. 일주일의 첫째 날인 일요일을 '욤(날) 알하드(첫째)' 라고 부른다. 또한 해가 지는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라고 했던 구약성경의 날짜 개념을 차용했음을 익히 알 수 있다.

아랍 국가와 이슬람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요일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욤 알하드(첫째 날-일요일), 욤 알이스나이나(둘째 날-월요일), 욤 앗살라타(셋째 날-화요일), 욤 알아르바아(넷째 날-수요일), 욤 알카미스(다섯째 날-목요일), 욤 알조마아(여섯째 날-금요일), 욤 아쌉트(일곱째 날-토요일)

이에 덧붙여 이슬람력에서의 12달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1월은 무하르람, 2월은 싸파르, 3월은 라비을 아우왈, 4월은 라비읏 싸니, 5월은 주마달 울라, 6월은 주마닷 싸니, 7월은 라자브, 8월은 샤으반, 9월은 라마단(금식의 달), 10월은 샤우왈, 11월은 둘 까으다, 12월은 둘 힛자(성지순례의 달) 등이다.

▲ ‘라일라트 알 미라즈’는 마호메트의 야간 여행과 승천의 날을 기념. 마호메트는 꿈속에서 가브리엘 천사와 함께 부라끄(buraq)라는 짐승 등에 타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 이슬람의 ‘신앙적’ 공휴일

다음으로는 이슬람의 실질적인 주요 종교적 공휴일을 정리한다.(괄호 안의 월 일은 히즈라력 기준) △ 라스 알 암(1월 1일) 이슬람력의 새해.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이슬람력이 따로 있기 때문에 서양력에 기준한 새해 첫날에 큰 비중을 둘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슬람력의 신년에 큰 의미를 두는가. 그렇지도 않다.

이슬람 신자 태반이 자신들의 신년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특별 예배를 위해 모스크에 가는 일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공휴일을 만끽하며 1년을 설계하는 하루일뿐이다.  매년 10일 정도 주기가 짧아지는 최근 전후의 이슬람 신년은 아래와 같다.
 
2005년 2월 10일(1426년 1월 1일-히즈라력), 2006년 1월 31일(1427년 1월 1일), 2007년 1월 20일(1428년 1월 1일), 2008년 1월 10일(1429년 1월 1일), 2008년 12월 29일(1430년 1월 1일)

△ 아슈라(ashura-1월 10일) 수니파에게는 자선을 행하는 성스러운 날, 특히 시아파에게는 마호메트의 후손인 이맘 후세인의 순교 기념일로 매우 각별한 의미가 있다. 후세인은 680년 이라크의 카르발라(kerbala) 전투에서 수니파에 항거하다가 전사하였다. 그런데 이슬람 시아파는 마호메트 사망 후 이맘 후세인을 유일한 이슬람의 지도자라고 굳게 믿고 있기에 그가 순교한 날을 기리는 아슈라는 이슬람 시아파의 최대 종교행사이다.

아슈라 때에는 수많은 시아파들이 카르발라를 순례하기 위해 모여든다. 그런데 이맘 후세인은 전사할 당시 온몸이 찢겨 사살되었다고 전해지며, 이 때문에 아슈라에는 많은 시아파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스스로를 칼이나 채찍으로 이마와 등을 때리거나 상처를 내면서 후세인의 죽음을 애도한다.

△ 마울리드 앗 나비(mawlid an nabi-3월 12일)는 마호메트 출생일이다. 마호메트는 쿠레이쉬 부족으로 서기 57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의 출생일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의 아버지 압둘라는 마호메트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고 어머니는 마호메트가 여섯 살 되던 해에 죽었기 때문에 삼촌 아부 탈리브가 그를 양육했다.

△ 라일라트 알 미라즈(lailat al-mi'raj-7월 27일)는 마호메트의 야간 여행과 승천의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마호메트가 메디나로 피신하기 전 꿈속에서 가브리엘 천사와 함께 부라끄(buraq)라는 짐승 등에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 다른 예언자들과 솔로몬 사원에서 예배를 올리고 승천했다고 전해지는 날이다.

△ 라일라트 알 바라아(8월 15일)는 다가오는 해의 운명이 정해지고 죄가 면제되는 밤이다. △ 이들 피뜨르(10월 1일~3일) 1개월간의 라마단 단식을 종료하는 축제일로 이슬람권의 두 번째 큰 명절이다.

△ 이들 알 아드하(12월 10일)는 희생제이다. 이 희생제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명령을 이행하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양을 대신 제물로 바친 사건을 예언자 마호메트가 기념한 것을 계기로 매년 준수되는 이슬람 최대 명절 중 하나다. 메카순례의 마지막 날에 치러지며 순례하지 않는 사람들은 양을 바치는 날이기도 하다. 

 
▲ ‘아슈라’는 특히 시아파에게 매우 각별한 의미가 있다. 마호메트의 후손인 이맘 후세인의 순교 기념일로 시아파들은 스스로를 몸에 상처를 내면서 후세인의 죽음을 애도.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 인도네시아! 인구 2억1000여만 명 가운데 90%가 이슬람교도인 인도네시아에서는 희생제를 맞아 부자들이 염소와 소를 이슬람 사원에 기증해 빈민들에게 나눠주도록 하는 게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부유층 이슬람교도가 선행을 통해 신앙을 진가를 과시하려는 듯 희생제를 앞두고 염소와 소를 일시에 대거 구입하는 바람에 이들 가축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매년 되풀이 된다. 대목 경기를 챙기려는 농촌 주민들이 인근 시골에서 수백 마리의 염소와 소를 구입해 자카르타 시내 공터에 모아놓고 산 채로 판매하는 이색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의 사형이 집행된 지난해 12월 30일은 공교롭게도 이슬람 최대 축제인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후세인 재판의 주심을 맡다 압력으로 물러났던 리즈가르 모하메드 아민 판사는 "이라크 법률은 희생제 기간 중 사형집행을 금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라크 정부가 이 같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처형을 강행한 것은 후세인 지지자인 수니파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 이들 가디르(12월 18일-시아파)는 ‘가디르 알 쿰’이라는 오아시스에서 마호메트가 최후의 순간에 알리를 그의 후계자로 택한 날이라고 믿는 시아파들만의 공휴일이다.

 
◇ ‘안식일’ 유대교에서 차용

마호메트 활동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는 이미 토착화된 유대교도들이 상당수 있었다. 유대교도들은 비록 이민족들의 탄압과 학정을 피해 아라비아 지역에 살고 있었으나 여전히 유일신을 믿고 안식일을 지키며 예루살렘 중심의 신앙생활을 했다.

마호메트와 그의 추종자들은 메디나로 이주한 직후 유대교와 ‘메디나 협약’을 맺는다. 그것은 마호메트의 종교와 유대교가 상호 공존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슬람의 예배일이 금요일인 것은 유대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호메트가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시작하는 금요일 일몰 전 열린 시장에서 유대인들에게 이슬람 신앙을 전하기 위해 신께 예배를 드린 데에서 금요예배가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 희생제는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명령에 따르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양을 대신하여 제물로 바칠 것을 명한 사건을 기린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해 그 관계는 깨어진다. 유대교에서 마호메트를 예언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마호메트가 자신을 예언자임을 주장하기 시작했을 때 유대교에서는 이미 그가 이단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단호하게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624년 2월, 마호메트의 추종자들은 기도하는 방향인 ‘키블라’(quiblah)를 예루살렘에서 메카로 바꾸게 된다. 실제, 이슬람이 유대교와 구별되는 독립된 종교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유대교와 결별을 하면서 마호메트 추종자들은 유대인들의 안식일인 토요일 대신 금요일에 모이기 시작했고 정월에 행하던 유대교의 금식일을 지키는 대신에 마호메트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슬람력의 9월인 라마단月을 금식기간으로 단호하게 변경했다.

이 날은 아무 일도 할 수 없기에 상점은 문을 열지 않는다. 모스크(사원)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코란을 읽으며 하루를 지낸다. 미국이 이라크를 본격 공습한 2003년 3월 22일은 다름 아닌 이슬람 안식일이어서 아랍인들의 격렬한 공분을 자아냈다. 


<筆者 소개> 國際政治學을 전공한 소정현 편집위원(전북본부장)은 國內外 핵심 이슈들에 대해 전문적 식견과 통찰을 가지고 여러 매체에 메인 관심사들을 생동감 있는 필치로 반영시켜 왔다. 전방위적 그의 논제는 늘 시의 적절하면서도 논제의 포인트를 빈틈없이 과녁 한다. 소정현 편집위원은 21세기의 국내외적 복잡다단한 다원 변수의 이질성과 공통성을 스피드 있게 해부하면서 도래할 시대의 패러다임을 단순 명료하게 조합하고 배열하는데 탁월한 역량의 소유자이다.
 
◇ 프로필 및 主要 著書, 現 브레이크뉴스 편집위원 / 全民日報 論說委員 역임 / 全州日報 記者 역임 / 굿바이 dj / 클린 에어 / 격동의 이스라엘 50년 / 노아방주 미스터리 / 초록별 대붕괴 시나리오 / y2k 디지털노아대홍수(1-2) 外 多數, oilga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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