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비현실적인 미국의 대선

오바마의 등장과 정치적 브랜드. 비현실적인 미국대선 분석
김형덕 기자 | 입력 : 2008/08/25 [07:41]
21세기 글로벌을 새롭게 디자인할 역동의 사회디자인 연구소 안병진 교수가 말한다.
 
<사회 디자인연구소가 바라보는 미국 대선분석 웹2.0시각으로 세상을 리더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비현실적인 미국 대선>


민주당 : 흑인 출신에다 그것도 후세인이라는 중간 이름(버락 후세인 오바마)을 가진 상원 초년병이 당선 가능성이 유력한 후보가 되다

공화당 : 개혁보수를 이야기하기에는 지나치게 석유와 군산복합체 등의 금권정치의 화신이 되어 버렸음. 제2의 루즈벨트를 꿈꿨으나 이미 2000년 예비경선 패배와 2007년 정치자금 부족으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맥캐인이 기사회생하여 오바마와 근접한 승부를 벌이고 있음

오바마의 등장과 정치적 브랜드

“지금 엄청난 미국정치의 대전환처럼 인식되는 오바마현상은 대부분의 레토릭은 빌 클린턴이나 힐러리에게 있다”

오바마는 갓 주 상원의원을 벗어나 아직 상원의 세부규칙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한 햇병아리에다가 소수파인 흑인인 데 비해 힐러리는 이미 민주당 큰손들의 기부금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장한 초선 상원의원 오바마의 출사표는 단지 과거 하워드 딘 전 주지사라는 아웃사이더가 시사 하듯이 한번 벌침을 쏘고 나서 죽는 벌의 역할에 그칠 것으로 대부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힐러리 진영과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핵심적으로 간과한 것은 첫 번째로 2008년의 시대정신이 하워드 딘이 등장했던 2004년보다 훨씬 더 변화의 폭과 깊이리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아웃사이더였던 하워드 딘과 달리 오바마는 21세기 특성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빌 클린턴의 매력을 부활시켰다는 것을 과소평가하였다는 점이다. 후술하겠지만 이후 필자는 이를 ‘정치의 오프라화’라고 부를 것이다.

우선 2008년 유권자들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큰 폭의 변화를 시대의 화두로 선택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의 선명한 단절에 대한 높아진 여론을 반영하여 민주당은 기본적인 선거의 대결구도를 ‘부시 정권의 4년 더 집권’ 대 ‘새로운 변화’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구도의 부각을 위한 전략으로 이라크전의 실패와 국내경제 침체를 연결시켜 총체적 실패로 규정하는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민주당의 시대인식과 전략이 부시체제의 총체적 실패규정과 이라크와 국내경제의 연결, 새로운 변화라면 최초의 여성 대통령후보라는 변혁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애초부터 힐러리 후보의 어려움은 명약관화했다. 왜냐하면 힐러리 후보는 엄밀히 말하면 9․11 이후 부시체제의 반대자라기보다는 사실 체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가장 극적인 예는 물론 널리 알려진 것처럼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침공에 사실상 백지수표를 준 원죄일 것이다.

2008년의 민주당은 과거 마이크로소프트 공룡의 아성에 도전한 체제도전자 브랜드인 애플을 요구하고 있는데 힐러리는 빌 게이츠를 닮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민주당진영은 2008년의 스티브 잡스를 기성 브랜드인 힐러리가 아니라 도전자 브랜드인 오바마에서 발견하고 대폭풍우를 일으켰던 것이다.

‘흑인 클린턴의 등장과 정치의 오프라화 현상

논의를 요약하자면 92년 클린턴을 연상시키는 도전자 브랜드인 오바마의 등장은 힐러리 고전의 최대원인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다름 아닌 클린턴 정치의 부활에 있음을 말한다.

반면에 빌 클린턴이나 오바마는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이며 “나는 당신의 고통에 공감한다(i feel your pain)”는 공감형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더 중요한 것은 오바마는 단순히 클린턴의 복제품이 아니라 20세기의 대표자인 빌 클린턴이 21세기의 감수성을 가진 ‘흑인 클린턴’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클린턴 2.0의 정치: 공감과 참여를 통한 희망

빌(그리고 힐러리는)은 ‘당신을 위해 싸우겠다(i will fight for you)’는 것이라면 오바마는 ‘함께 싸워나가자(we’ve got to fight together)’는 메시지로 보인다. 클라인은 오바마가 모든 연설에서 ‘나(i)’ 대신에 주로 ‘우리(we)’라는 단어를 구사하는 것에 주목한다.

오바마의 유명한 문구인 “우리가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we are the change that we seek)”라는 내용은 그의 비전을 잘 드러내준다. 이를 ‘대중메시아주의(mass messianism)’라고 말한다.

유권자들을 부르고 응답하는 감성주의적 쌍방향 대화에서 유감없이 재능을 발휘한다. 이는 마치 오프라의 쇼나 마이클 잭슨의 쇼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그의 뉴햄프셔 패배 인정연설은 이후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리드미컬하고 집회에서 일부 관중은 극단적 감정을 폭발시킨다. (빌 클린턴은 정책광이면서도 영감어린 지도자 기질을 동시에 가졌지만, 오바마는 정책보다는 영감을 주로 가진 레이건형 정치인으로 분류한다)

오프라의 쇼가 엄청난 편지나 이메일이 쇄도하며 함께 만들어가듯이 오바마는 정치시장에서의 소액기부금은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며 힐러리의 전통적인 거대 기금모금의 정치를 압도해버렸다.

오바마의 이러한 보편적 담론과의 연결은 오바마의 정치가 협소한 흑인정치가 아니라 흑인과 중산층, 서민의 백인층, 이주민 등을 폭넓게 연대하는 정치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국 힐러리와 오바마의 대결의 성격을 전반적으로 요약하자면 이념적 대결이라기보다는 기성 정치체제에 일부 편입된 힐러리의 인사이더 정치 대 오바마의 도전자 정치, 이성주의적 정책광 대 감성주의적 영감의 지도자 스타일의 대결, 민주당의 전통적 정치 대 새로운 연대의 정치, 20세기 베이비부머 세대의 아이콘인 클린턴 정치 대 21세기 포스트 베이비부머 세대의 아이콘인 오바마 정치의 대결이라고 종합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워드 딘의 새로운 혁신과 무브온 조직 같은 온라인에서의 창조적 토대가 결합되어 민주당은 그간의 오랜 조직적 약화를 반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오바마라는 미래적 정치의 출현은 미국 민주당의 발전의 새로운 전기로 작용할 것이다.

멕케인의 주류로의 변신의 모색과 공화당의 분열

베트남전쟁 포로로서 국가안보에 대한 그의 화려한 경력과 여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라크 군대 증원과 그 전술적 성공으로 드러난 원칙적 리더십, 부시 감세안 지지로의 입장선회에 따른 개혁보수 기치의 약화로 공화당 주류진영의 지지가 살아난 것이다.

여기에다가 미국언론이 총애하는 그의 스타 기질은 경선을 거듭하면서 그의 약진에 최대의 정치적 자본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그의 기사회생을 결정적으로 도운 것은 미국 보수주의 진영의 심각한 내부분열이다.

하지만 그들의 분열과 긴장 속에서 뜻밖에 선두주자로 등장한 것은 제2의 레이건이 아니라 레이건의 주류 보수주의와는 매우 다른 루즈벨트 개혁보수주의인 멕케인이다. 개혁보수주의란 작은 정부론과 같은 시장근본주의나 도덕주의적 정부를 강조하는 기독교근본주의와 달리 특권층에 대항하고 환경을 고려하는 등의 공익의 정치를 추구하는 노선이다. 멕케인은 2004년 민주당의 케리 대통령후보에 의해 부통령 후보로까지 의사가 타진되고 주변 측근들에 의해 (민주당으로)당적을 바꿀 것을 권유받았을 정도이다. 실제 멕케인은 (공화당 후보 경선 전까지는) 무당파층과 민주당 지지층에서 인기가 높았다.

멕케인은 공화당 후보가 되기 위해서 공화당 주류 노선을 많이 수용하면서,  자신은 레이건의 아이들로 정치역정을 시작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아직도 공화당 보수에서는 멕케인이 보수의 탈을 쓴 자유주의자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일부 공화당 논객들은 멕케인에 대한 증오심에 사무쳐 이번 대선은 오바마나 힐러리가 이기게 놓아두어 이라크전 수렁 등의 부작용이 민주당으로 전가되게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은밀하게 펼치기도 한다.

멕케인이 물려받은 시대는 개혁보수에의 강한 운동은 일어나고 있지 않고 그는 주류화를 통해 제2의 부시 이미지로 근접해가고 있다. 만약 그의 실험이 민주당의 정치적 미숙에 힘입어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는 과거 루즈벨트와 달리 과감한 개혁보수라기보다는 부시 3기라고도 부를 수 있는 노선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의 실험이 대선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미국의 공화당은 향후 진로를 놓고 더 큰 내부의 분열과 혼돈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공화당은 표피적으로 현재의 여유로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결론

매우 이례적인 성격의 두 후보 간의 대결은 그 만큼 미국정치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과 변화에의 갈망이 강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두 후보들로 진행되는 미국 대선은 한국의 진보와 보수 진영에게 정치의 역동성, 반응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미국정치는 현직 하원의원들의 재선율이 90퍼센트가 될 정도로 한국정치에 비해 역동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민주, 공화) 양 당에서 매우 이례적인 후보의 등장은 미국정치의 역동성, 반응성이 부분적으로라도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오바마현상은 미래적 이슈와 문화적 감수성을 가진 도전자 브랜드의 정치리더십이 사회적 기반에 뿌리내린 대중적 정당과 정치의 구성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생생하게 잘 보여준다.

또한 빛은 바랬지만 멕케인이라는 개혁적 보수의 도전은 미국정치의 심각한 타락과 정체에도 불구하고 정치문화 저변에 아직은 남아 있는 공화주의적 에토스를 짐작하게 한다.

과거 imf 위기라는 파국을 겪고 나서도 여전히 한국의 특권적인 천민자본주의 구조는 개혁되지 않았고 오히려 금산법과 같은 견제와 균형장치의 이완 속에서 더 심화된 위기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고려할 때 미국의 개혁적 보수, 진보의 혁신에 대한 노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안병진(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저자 안병진은 현재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사회학과를 졸업하였고 서울대 정치 대학원에서 석사,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노무현과 클린턴의 탄핵 정치학: 미국적 정치의 시대와 민주주의의 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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