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동지 美 최초 흑인대통령 탄생"

<리뷰페이지> ‘배럭 오바마’ 세계사를 다시 쓰다
소정현기자 | 입력 : 2008/11/05 [23:55]
 2008년 미국 대선 장기 레이스의 서막을 알리는 3일 민주.공화당의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거센 폭풍우가 몰아쳤다. 민주당에선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초선 연방상원의원인 버락 오바마가 큰 차이로 승리하고, 공화당에서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1위를 차지하는 대이변이 발생했다.

이 중에서도 민주당 예비후보로 나선 흑인 출신 ‘배럭 오바마’(barack obama)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오바마 돌풍은 미국 사회가 어떤 리모델링을 어떻게 갈급해하고 있는지 흥미 이상의 연구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자칭 변화와 혁신의 전도사 오바마의 알파와 오메가를 입체 총력 해부하기로 한다. 

 
▲ 미국 대선판도 지각변동의 주역 ‘민주당 오바마 상원의원’
 

       부친은 아프리카 케냐출신 혼혈아로 격동기 보내

       미국 연방의회 5번째이자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 

       2008 美대선 민주당 유력후보로 힐러리와 대접전

      ‘상대방 무력화’ 트라이앵귤레이션 전략구사 귀재

 
 
▽ 미국 전역에 부는 ‘오바마 新風’

지난 2007년 2월 11일, 아프리카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美 캔자스주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일리노이 상원의원 ‘오바마’가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에서 대선 출마를 세계 전역에 공식 천명했다. 오바마 의원이 출마를 공식 선포한 일리노이주 의사당은 1858년 당시 에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내부가 갈라진 집은 서있지 못한다.는 연설로 흑인노예 해방의 힘찬 서곡을 알렸던 유서 깊은 장소이다.

46세의 젊은 나이에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직을 야심차게 정조준한 것이다. 누구보다 미국 신세대 젊은 층들에서 오바마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이들은 "오바마야말로 인종차별을 넘어 이념적 장벽을 극복하고 미국을 전폭  쇄신시킬 수 있는 최적임자라며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오바마의 인기가 수직상승하면서 하트 상원 빌딩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은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정상적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오프라 윈프리, 조지 소로스, 워렌 버핏 등 각계 최상의 명사들까지 가세하여 오바마 지원을 위해 발 벗고 나서자 민주당 선두주자인 힐러리와의 지지도 격차 또한 가파르게 좁혀지고 있는 형국에 있다.

더욱이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인터넷 판이 7월초 미국의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대상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대다수인 92%가 ‘흑인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다.’는 이례적 호의적 반응은 미국 정치사에서 218년간 고수되어온 백인 남성 대통령의 전무후무한 기록이 내년 대선에서는 균열이 가해질 수도 있음을 시사 하는 것이어서 오바마 상원의원 진영에선 한껏 고무되어 있다.

 
▲ 오바마는 美 변혁과 혁신의 신시대 리더임을 공언하다.

▽ 힐러리와 치열한 박빙승부

내년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1년 이상 앞두고 현재의 여론조사 추이를 볼 때,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계속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 맞수인 공화당에서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쾌조의 출발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 인터넷 매체인 ‘라스무센리포트’가 지난 8월 13일 보도한 바에 의하면, 힐러리 의원(뉴욕 주)이 3주째 40%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오바마가 25%의 지지율로 힐러리를 맹추격하고 있다. 
 
▲ 오바마는 힐러리를 바싹 뒤쫓고 있다.
또한 美 cbs  여론조사의 ‘호감도’ 면에서는 오바마가 50% 가까운 지지율을 보인 반면, 힐러리는 39% 정도에 그쳤다. 따라서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이들 중에 한 명이 민주당 본선 티켓을 거머쥘 것이 확실시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선출되었을 때를 상정하여 오바마가 러닝메이트로 나선다면 환상의 조합을 이룰 것이라는 낙관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아직 원론적인 수준이긴 하나, 대선주자들의 조합이 경쟁자의 약점을 적극 보완하여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에서 미연에 촉발된 것이다.

민주당에서 확고부동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힐러리 의원은 경륜에선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만, 개혁적 이미지에선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힐러리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변화의 기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오바마와 환상의 콤비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힐러리가 박학다식하며 경륜까지 겸비한 출중한 후보임은 분명하나, 아직 미국사회가 여성 대통령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미성숙 여건인데다가 개혁적 마인드가 결핍되어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힐러리 대통령-오바마 부통령이 필승카드로 부상하는 조짐이 역력하다.

이는 미국 cbs 방송이 지난 8월 8-12일 사이 전국의 등록유권자 1천72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유권자들이 ‘경륜과 변화’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변화가 41%, 경륜이 44%로 엇비슷한 결과를 보인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의회 비준에 있어 “미국의 무역적자를 확대하고, 중산층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며 한 목소리로 반대 의사를 밝힌 힐러리와 오바마! 그렇다면 둘 관계는 무척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비록 라이벌이긴 하지만 ‘아니올시다.’가 정직한 답변에 가까울 것 같다.

힐러리와 오바마 사이 체감지수는 상원의원에 출마한 오바마를 후원하기 위해 그의 정치자금 모금회에 직접 참석한 3년 전에 비해 현재는 천양지판이다. 물론 오바마는 상원 당선 이후 힐러리에게 기꺼이 한 수 배우겠다는 낮춘 자세를 보였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때는 함께 휴스턴 현장을 찾아 돈독한 우의를 과시하였으나 이제는 앙숙지간으로 돌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  미국 사회는 오바마의 제3지대 노선을 열렬하게 갈망한다.
둘 사이가 급랭하기 시작한 것은 오바마가 대권 도전을 공언하면서부터이다. 오바마가 대선탐사위원회를 구성한 직후 상원에서 힐러리에게 악수를 청했지만 힐러리는 이를 외면했다는 소문이 동료 의원들에서 불거져 나왔다.
 
지난 8월 4일에는 시카고의 민주당 포럼의 참석자들이 46번째 생일을 맞은 오바마에게 축가를 불러주자 힐러리도 미소를 지으며 오바마에게 악수를 청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토론에서 힐러리가 로비스트 자금을 받은 사실을 오바마가 맹비난하자 이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거자금 모금 실적에서 오바마는 힐러리를 리드하면서 둘 사이는 더욱  소원해지고 있다. 지난 7월 16일 美연방선거위원회(fec)에 신고된 2.4분기 선거자금모금 현황 분석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클린턴 의원이 2천150만달러의 경선자금을 모금한 반면, 오바마 의원은 3천200만달러의 경선자금을 끌어나는데  비상한 자질을 보인 것이다.

 
▽ 너무나 불우한 어린 시절

미국의 수반이자 세계의 지도자를 꿈꾸는 오바마의 비전과 열정의 단초 되는 어린 시절은 과연 어떠했을지 연신 궁금증이 배가되어 온다.

1961년 8월 4일 출생한 오바마는 악시덴털 칼리지에서 2년을 다니다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에 편입하여 국제관계를 전공했다. 그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1988년 하바드대 로스쿨에 입학하여1991년 박사학위를 땄다. 오바마는 시카고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다가 1993년부터 2004년 일리노이주에서 미상원의원에 당선될 때까지 시카고대 로스쿨에서 헌법을 강의했다.

 
▲  오바마 부친은 미국에 유학한 아프리카 케냐 출신이었다.

1996년 미국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을 거쳐 2004년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오바마! 흑인으로서는 미국 의정사에 있어 5번째이자 현재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으로서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몰고 온 오바마는 과연 유토피아 환경에서 유복하게 성장하여 왔을까? 실상은 그 정반대에 위치에 있었는바, 오바마의 인생승리이자 인생역전으로 칭하여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싶다.

오바마 상원의원은 자서전에서 젊은 시절 마약 복용 사실을 실토했을 정도로 불우한 유년 시절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 언론은 케냐 출신인 오바마 의원의 선조가 과거 노예상을 했다는 기록까지 들추어내고 있다.  오바마의 입지전적 성공 스토리를 추적하여 보기로 한다.

그는 흑인도 백인도 아닌 혼혈이다. 아버지인 바락 오바마 시니어(barack obama sr.)는 케냐 출신의 흑인이다. 어머니 앤 던햄 (ann dunham)은 캔자스에서 태어난 백인이다. 오바마의 부친은 케냐 독립 직전, 미국의 후원으로 하와이대에 유학을 오게 된다. 부친은 클래스 메이트였던 미국 백인 어머니와 결혼해 오바마를 낳았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하버드 박사과정을 마치고 아프리카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급거 귀국하는 바람에 가족이 풍비박산되었다. 두 사람은 오바마가 2살 때 이혼을 했다. 부친은 고국 케냐로 금의환향을 했으나 아들이 21세였을 때, 교통사고로 세상과 작별을 고하였다.

▲ 오바마의 비전과 인간적인 면모까지 노출시킨 ‘담대한 희망’
이후 모친은 인도네시아 출신의 유학생 롤로 소토로 (lolo soetoro)와 재혼을 하고 딸 마야를 낳으면서 남편을 따라 인도네시아로 갔다. 오바마는 모친과 함께 1967년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로 이주하여 6-10세까지 초등학교엘 다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슐라웨시 섬에서의 생활도 잠시, 오바마는 다시 하와이의 외조부모 댁으로 돌아가 초등학교를 마쳤다. 어머니 앤은 난소암으로 1995년 사망했다.

"숯처럼 새까만 아버지와 우유처럼 새하얀 어머니"가 결혼한 그 당시에는 미국의 전체 주 가운데 절반이 흑인과 백인 사이의 결혼을 엄벌로 처리하고 있었다.
 
오바마는 흑인으로서 모욕과 냉대, 차별을 숱하게 경험했다. 그가 청소년 시절 술과 마리화나에 빠진 방황도 이런 인종적 배경과 절대 무관치 않다.

이런 오바마를 심층 투사하는데 있어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그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과 ‘버락 오바마, 담대한 희망(hope &dreams)은 여러 시사점을 신선하고 풍부하게 제공하여 준다.
 
각종 매체의 극찬 속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은 정치인 오바마 이전에 인간 오바마에 대한 진솔하고도 감동적인 대서사시적 기록물이다. 또한 ’담대한 희망‘은 오바마의 야심과 비전, 정책 노선뿐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면모까지도 속속들이 엿볼 수 있게 한다.

 
▽ 오마바의 진정 인기 비결은?

 
▲ 美 흑인사회는 오바마의 정체성을 굳게 신뢰한다.
 
오바마는 빼어난 연설 솜씨는 압권이다. 청중들은 오바마가 자신들의 어려움과 고민 그리고 바램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에 이내 푹 빠져든다. 부지불식간에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마력의 소유자이다. 동족이라 할 수 있는 흑인들조차 오바마를 자신들에 이질적 존재로 간주했었는데, 이는 일순간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오바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1세대 민권운동가들을 유대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탈출시킨 "제1세대의 모세의 시대"에 비유하면서 자신은 모세가 완결하지 못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의 입성을 이루어낼 "제2세대인 여호수아 시대"의 일원으로서 선배민권운동가들의 업적 위에 금자탑을 쌓겠다고 공언함으로써 차세대 리더로서의 진한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  오바마의 인기 급상승 비결은 실천적 지성인 귀감도 한몫
제 아무리 출중한 역량의 소유자일지언정 미국 사회에서 소수인종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오바마가 흑인 출신에도 불구하고 인기몰이를 가속화 하는 비법은 진정 무엇일까?

일명 "트라이앵귤레이션"(triangulation)이라는 삼각분할전략의 귀재라는 평가다. 이 전략의 실체는 상대방의 정책을 비판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소속 정당의 추구하는 정책을 비평하는 고해성사적 특성에 있다. 변화와 혁신의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는 이미지를 유포시켜 지지층의 외연 확장시키는 최상위 무기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오바마는 처음부터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 극소수 정치인들 중 하나다. 그렇다 해서 오바마를 군비를 군축주의자나 평화지상주의자로 봐서는 판단착오이다. 그는 미국의 핵심적 이익이 위협을 받을 경우 군사력 사용을 망설이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는 "세계 속에서의 미국의 위상은 줄어들고 있다. 그 단적인 예시로서 미국은 세계에 협조하는 대신에 강요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우리는 과거의 대화국면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는 경쟁에서 생존하며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오너의 압박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백만원군이라 할 수 있는 흑인 유권자들에 직격탄을 날린다. 흑인 커뮤니티는 투표권을 적극 행사하지 않으면서 정부가 자신들에게 홀대한다고 불평하고 출세한 흑인에 대해서는 백인 흉내를 낸다."며 ‘조소하는 냉소적 문화가 팽배해 있다.’고 신랄한 비평을 멈추질 않는다.

▲ 오바마의 반려자이자 내조자인 ‘미셀 오바마!’
엘리트 사회와 빈민 사회를 두루 체득한 오바마의 만고풍상 인생역정과 흡수력 높은 연설 솜씨가 이를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오바마의 파노라마 입지전적 인생역정은 좌와 우, 양 극단을 뛰어넘어 제 3의 대안을 모색하는 트라이앵귤레이션 전략에 구사에 탄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는 1985년, 혈혈단신 흑인 민권 운동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시카고로 날아간다. 오바마는 시카고의 사우쓰 사이드(south side) 지역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구직은행 (job bank) 활동을 통한 실업문제 해결과 석면 제거 활동을 통한 보건위생 활동에 전심전력했다. 

오바마는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 신자다. 오바마의 반려자인 ‘미셀 오바마’는 프린스턴 대학 졸업 후 하바드 로스쿨을 졸업한 재원으로 “남편이 정치 꿈을 키울 때 나는 가족의 꿈을 돌본다.”는 내조 덕담으로 높은 신망을 얻고 있다. 이들은 마리아(8세)와 샤샤(5세)의 두 딸을 두었다.  




▽ 배럭 오바마 프로필

2004 일리노이주 민주당 연방상원의원
1996 미국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1993-2004 시카고大 로스쿨 교수
1991 하버드대학 로스쿨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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