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土 曜 隨 筆> 수필가 이미선, ‘부부! 그 사랑과 애틋함으로’
수필가 이미선 | 입력 : 2009/02/09 [04:06]
▲ 수필가 이미선
두 달 전 작은 아버님이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지셨다. 작은어머님은 마침 시골에 내려가 있던 남편에게 급히 연락하셨다.
 
차는 급히 달려서 한 시간안에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왔다. 안좋은 일은 이어서 온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병원에는 주말이어서 의사가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신속하게 연락이 닿아 의사가 왔지만 환자가 도착한 후 네 시간이나 지나서였다. 

환자의 상태를 구석구석 자세히 살피던 의사는 환자의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수술을 해도 식물인간이 될 확률이 거의 90%라고 했다. 가족들은 마지막 한가닥 끈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술을 당부했다. 수술 경과는 좋았지만 결국 작은 아버님은 사람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의식도 없이 식물인간이 되셨다. 그래도 우리 모두는 참혹한 모습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발병하신 지 두 달이나 지났지만 환자의 상태는 마찬가지다. 요즈음에는 아주 괴로운 표정을 지으시고 감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지 손과 발에 힘을 주신다. 뇌출혈은 뇌 속의 작은 동맥이 터져서 피가 뇌실질 속으로 흘러 들어가 뇌세포가 기능을 잃어서 생기는 병이다. 뇌출혈은 갑자기 발생하는 병으로 생각하지만 대부분 오랫동안 고혈압을 앓은 사람에게 생긴다.

아버님 댁 근처에 사는 작은아버님은 아버님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러오셨다. 아버님 형제분은 7남매이지만 두 분은 아주 작은 일까지 의논하실 만큼 형제 중에서 우애가 좋으셨다. 각별하게 지내던 동생이 저렇게 되었으니 아버님이 얼마나 마음 아프실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작은아버님도 장손인 우리를 참 아껴주셨다. 우리집 근처에 친아들이  살고 있는데도 시골에서 올라오시면 꼭 장손 조카인 우리 집에서 머무르셨다. 아이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용돈도 주셨다.

물론, 작은 아버님도 시어른이라서 어렵기는 했지만 다른 분들보다 며느리들을  배려하고 이해해 주셨기 때문에 한결 다른 어른들보다  편했다. 그렇게 가까웠던 어른이 비참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계시니 조카며느리라도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우리 시댁 친척들은 화목하고  우애가 좋아서 큰댁, 작은댁 사촌이라도 친형제처럼 지낸다. 작은아버님이 쓰러지시던 그 날, 남편은 평소 때보다 더 시골에 내려가고 싶다고 했다. 만약에  시골에 내려가 있던 남편이 가까이서 바로 모셔오지 않았으면 시간이 지연되어 수술했다 하더라도 상태가 훨씬 악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일을  보더라도 혈육간의 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것이 있나 보다..

작은아버님은 늘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시고 큰 병도 없던 분이다. 그런 분이 갑자기 의식도 없는 위험한 상태가 되니, 친척들 모두 얼마나 당황하고 놀랐는지 모른다. 대가족 친척들의 발길은 병원으로 이어졌다, 친척들은  병원 복도를 서성이며 환자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호전되기를 소망했다. 모두 한마음으로 환자가 어서 일어나길 기원했다.

제일 가슴이 아픈 사람은 누구보다도 아내인 작은 어머님이리라. 처음에 작은 어머님은 갑자기 당한 충격과 슬픔으로 자주 눈물을 남몰래 훔치셨다. 육십 평생 남에게 악한 일 한 번 하지 않고 오직 선하게만 살아온 분이 저렇게 되셨다며 더욱 슬퍼하셨다.  아무리 주위에 집안 일가가 많고 자식들이 있어도 큰 일을 당한 작은어머님의 아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자 곁에서 침상을 지키던  작은 어머님은 힘겨운 상황을 어쩔 수 없이 현실로 받아들이시는지  병원에 갈 때마다 조금씩 환해지시는 모습이셨다. 작은어머님은 온갖 정성의 손길로 남편을 간호하신다.

밤잠도 못 주무시고 밤새 수시로 가래도 제거하고 온몸을 마사지 하신다. 남편 얼굴을 얼마나 깨끗하게 닦으시는지 항상 환자 모습이 빛날 정도이다. 우리 부부가 병문안 갈 때마다 마치 기도라도 드리듯이 남편의 손을 꼭 잡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 가슴 속 깊은 것이  뭉클해지고 숭고해 보인다.

비록 의식도 없이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는 남편이어서 눈도 못 맞추고 대화도 나누시지 못하지만, 오로지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내에게는 의지요, 의미가 되는 것 같았다. 한 여인에게서 지아비라는 존재는 그렇게 큰 위안이요 의미이다 . 작은어머님의 모습은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답게까지  느껴졌다. 

우리는 작은 아버님께서 저렇게 힘겹게 목숨을 이어가느니  차라리 돌아가시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작은어머님은 남편이 한가닥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힘이 되는 것 같았다. 남편이 큰 병환 중인데도 고통을 인내하며 간호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두 분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십여 년 전 단 한 번 선을 보고 결혼하신 두 분은 그동안 표현하지 않는 속 깊은 사랑을 알뜰하게 가꾸어 오셨다. 지금까지 부부간에 큰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살아오셨다 했다. 부부는 나이 들어가면서 포도주가 익어가듯이 세월과 더불어 정이 깊어가는 것 같다. 

이혼율이 나날이 늘어  요즈음  부부들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해로를 하라는 주례사의 말씀을 저버리고 쉽게 헤어진다. 물론 부부가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일로 힘든 일도 많이 생기겠지만 , 조금만 인내하면  아주 힘든 고비는 넘길 수 있으리라 .
 
부부란  서로의 생각을  좁히면서 살아야 한다. 어떻게 서로 수 십 년 동안 다른 가정과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결혼해서 살면서 항상 일치하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을까. 평생 부부로 살면서 서로의 간격을 좁히며 인내하며 배려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헌신적으로 지아비를 돌보는 작은어머님의 모습에서 부부가 과연 무엇인가 절실하게 실감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부부도 남은 세월을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진정 인생에서 부부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새기며 우리 부부도  평생 동안 아껴가면서 알뜰살뜰 살아가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한다.


▽  이미선 수필가 프로필

강릉 출생
숙대 교육과 졸업
1998년  예총 <예술세계 >수필 등단
숙문회 회원
예술시대 작가회 회원
수원 문인협회 회원
경기 문학인협회 회원
경기 문학인협회 사무차장
이메일 - lms137000 @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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