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은 꿈을 만들고 꿈은 생생한 현실로

수채화 가득한 <박종규의 글 세상> 길 따라 열리는 길
박종규 에세이스트 | 입력 : 2009/02/13 [14:15]
아주 오래 전, 가로등도 없던 길가에서 카바이트로 불을 밝히고 낡은 책들을 파는 노점상들이 있었다. 내 유년시절에 문득 그 곳에서 만났던 한 권의 허름한 책을 기억하고 있다. 그 책에는 열망을 강하게 품었던 사람들과 그 열망한 것을 현실로 얻게 된 체험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꿈을 실현시키려면 열망을 품으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었다.

나이가 들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생활은 결국 내가 생각한대로 전개 되고 있었음을 알았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의 원인에는 내가 있었고, 크든 작든 내가 성취한 모든 일에는 그 만큼의 내 열망이 간섭하고 있었다는 것을.

 
▲ 야자수 바다에 우뚝 선 시기리아의 바위산(sigiriya rock)

80년대 중반, 국영방송에서는 스리랑카 특집을 방영하고 있었다. 불교의 나라인 스리랑카의 풍물과 찬란한 불교 미술유적이 소개되었다. 특별히 야자수 바다에 우뚝 선 시기리아의 바위산(sigiriya rock), 그 곳에 유적으로 남겨진 신비로운 불교 미술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어릴 적부터 세계 여행의 꿈을 안고 자랐다. 이 꿈은 무역 회사에 입사함으로써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스리랑카는 그때까지 정복되지 않았던 미지의 산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잠재된 호기심이 강렬하게 분출되면서 언젠가 저곳에 내가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 바위산에 오른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 그 바위산에 오른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5천년 세월 동안 색체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여인의 벽화 바로 앞에서 세월의 이끼를 털어내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그 곳에 갈만한 어떤 연결고리도 보이지 않는 시점이었다.

2개월쯤 지났을까? 회사의 오너가 동남아 3개국의 대통령으로부터 방문 요청을 받았다.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스리랑카였다. 내가 그분을 수행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나는 비로소 기회가 찾아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이런 저런 일들이 얽혀 나는 오너의 공식 수행원이 되었고 스리랑카는 여정의 마지막 방문국으로 일정이 잡혔다.

스리랑카 일정이 끝나는 날, 내가 오너와 함께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면 내 꿈은 접어야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귀국하였고 나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다른 업무를 마저 처리해야 했다. 그 일정 중에 이틀이 비었다. 당연히 시기리아 유적으로 가야 했다. 언제 다시 이 나라를 올지도 모르는데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스리랑카 북쪽을 거점으로 삼아 원주민인 타밀족이 암약하고 있었다. 위험하다면서 현지인 가이드들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목숨을 담보하고 가야한다는 것을 어렵사리 딸라로 해결했다. 목적지가 시기리아에서 캔디로 바뀌었다. 스리랑카 불교의 메카인 아름다운 고장 캔디를 가는 길에 시기리아는 잠깐 들리는 것으로 가이드와 타협이 되었던 것이다.

긴장을 풀지 못하고 도착한 시기리야의 바위산은 기다렸다는 듯, 아름다운 비밀의 정원을 펼쳐 보였다. 그곳은 5세기에 신할리 왕조 카사파 1세가 건설한 성체도시유적이었고 산기슭에는 정원과 담장들로 둘러싸인 시가지 유적이 있었다. 

 
▲ 바위산 암벽에는 기대했던 천상계의 여인 벽화가 5천년 신비의 고색을 품고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바위산 암벽에는 기대했던 천상계의 여인 벽화가 5천년 신비의 고색을 품고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500여명에 이르렀다고는 하나 현재는 서쪽 측벽에 있는 22명만 남아 있었다. 

체구는 실물보다 조금 작았고 옷을 입지 않는, 풍만한 가슴을 가진 윗몸만 구름 위로 드러나 있었다. 눈은 가늘게 뜬 체 입가에 띈 미소는 가히 뇌쇄적이었으며 머리와 가슴 등에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생생하게 보존된 아름다운 색체는 벽화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성체 위에 오르니 정상은 그대로 왕궁터였고, 사방 천지로는 아스라이 야자수 바다가 전개되었다. 시기리아는 야자수 바다에 돌출되어 떠 있는 신비의 바위섬이었다.

내 눈 앞에 비로소 펼쳐지고 있는 시기리아의 유적! 나는 그곳, 나의 꿈속에 홀연 서 있었다. 이것은 결국 내 열망의 소산이었다. 난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이곳에 와 있었으니!

열망은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의 조정자들이었다. 나는 꿈을 열망하였고 그 열망하는 바에 따라 세포들이 움직여서 되지 않을 성 싶은 일도 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열망의 끝점에는 꿈이 있었다. 열망은 항상 현실보다 앞서 가 있었다. 열망이 먼저 나의 목적지인 꿈에 도착하여 내게 길을 마련해 주면 나는 그 열리는 길을 갈 따름이었다. 

 
▲ 내 눈 앞에 비로소 펼쳐지고 있는 시기리아의 유적! 나는 그곳, 나의 꿈속에 홀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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