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와 항아리에 담긴 ‘재외국민 투표권’

<추천칼럼> 우편투표 불허하고 재외공관서만 투표는 현실성 결여
송의용 | 입력 : 2009/02/24 [02:39]
여우가 황새를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음식은 오직 수프만을 준비했고 그것도 납작한 접시에 담아서 내놓았다. 여우는 의젓하게 앉아서 주인행세를 하며 수프를 맛있게 핥아 먹었다. 그러나 황새는 뾰족한 부리로 수프를 쪼아 먹을 수 없었다. 식사가 끝난 뒤 황새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떠나갔다.

얼마 후 이번에는 황새가 여우를 초대 했다. 황새는 잘게 썬 고기를 목이 긴 호리병에 담아 내놓았다. 부리가 긴 황새는 그 부리를 병 속에 넣고 맛있게 고기를 먹을 수가 있었지만 여우는 겨우 병 가장자리에 묻어 있는 부스러기만 핥을 수 있었을 뿐이다.
여우는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황새의 보복을 나무랄 수 없었다.

◆접시와 항아리에 담긴 ‘재외국민 투표권’

700만 재외동포들 중 주재국에 귀화하지 않은(시민권을 따지 않은) 동포, 즉 재외국민들에게 한국의 투표권이 주어졌다. 투표권을 달라고 오래동안 법정투쟁을 해온 해외동포들은 승리감에 젖어 있다. 재외국민들은 빼앗겼던 잔치상을 다시 받았다고 기뻐하지만, 그러나 잔치상에 차려진 음식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게 아니다. 음식은 분명히 근사하게 차려져 있지만 먹을 수가 없다. 마치 여우집에 초대받은 황새나, 황새집에 초대 받은 여우 꼴이다.

5일 통과한 개정안에 따르면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재외영주권자 전원에게 대통령선거 및 국회의원 비례대표 투표권을 부여하고, 한국내에 주민등록이 있는 일시 체류자의 경우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도 부재자투표에 준해 투표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투표소는 재외공관에만 설치하도록 하고 우편투표와 인터넷 투표는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재외동포라는 손님을 초대해놓고 음식은 모두 납작한 접시와 목이 긴 호리병에 담아 내놓은 것이다.

한국을 떠난지 좀 오래된 영주권자들은 보수적 성향이 짙어 한나라당에 유리하다고 착각하여 일시 체류자들에게만 투표권을 주자고 고집하던 민주당이 다행히 생각을 바꾸어 영주권자들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겨우 700만 재외동포 중에서 투표권을 찾은 재외국민들은 240만명 뿐이다. 그 240만 명은 미국 약 120만명, 일본 60만명, 중국 52만명으로 재미동포가 50%를 차지한다. 재미동포의 중요성이 그만큼 부각된다. 그러나 이 음식도 보기에는 그럴듯할지 몰라도 ‘그림 속의 떡(畵中之餠)’이다. 실제적으로 재외공관에서의 직접투표만 허용하고 우편투표와 인터넷 투표를 금했기 때문에 공관이 있는 큰 도시 이외의 변두리 지역에 사는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 먼 거리에서 달려와 투표할 것인가. 항간에는 투표율이 10%에 머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황새와 여우’ 우화 다시 써라

들리는 바에 의하면 우편과 인터넷 투표를 반대한 것은 주로 한나라당이란다. 인터넷투표를 할 유권자는 주로 젊은 사람들로 성향이 진보적이라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황새와 여우같은 참 딱한 생각이다. 우편투표와 인터넷투표를 허용하면 부정투표 방지가 어렵다는 이유로 이런 “반쪽”의 개정안을 통과시켜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이 개정안은 2007년 6월28일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관련투표법을 개정하라’고 명령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크게 어긋난다. 당시 헌재 명령의 근본취지는 재외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인데,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투표권을 주지 않은 것과 부정투표를 방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우편투표를 금지한 것은 이 취지에 어긋난다. 부정투표 방지는 선관위의 고유업무인데 이것이 어렵다고 포기해버리고 재외공관에서의 직접투표만을 고집하는 것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 이다. 아마도 이 개정안도 헌재에 다시 제소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투표대상을 제한한 것과 투표방법을 제한한 것은 당장 고쳐야 한다. 손님을 초대했으면 그 손님들이 편안히 음식을 먹을 수 잇도록 최선의 서비스를 해야 한다. 이것이 “선진정부”이고 “선진행정”이다. 한나라당과 만주당은 어리석은 황새와 여우에 머무르지 말고 “변화”해야 한다. 정치권은 이솝우화 ‘황새와 여우’를 다시 써야 한다. 참고로 ‘어린왕자가 쓴 황새와 여우’를 소개 한다. 여야는 꼭 숙독하기 바란다.

◆어린왕자가 본 ‘황새와 여우’

“안녕” 어린왕자가 말했다. 하지만 황새는 무엇인가를 골몰히 생각하느라 어린왕자의 인사를 듣지 못했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니” 어린왕자가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야 황새는 어린왕자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나는 이웃동네에 사는 여우의 초대에 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어린왕자가 말했다. “왜 그것을 고민하고 있지.”

황새가 말했다. “며칠 전 여우가 저녁식사에 초대했지. 그런데 식탁에 나온 것은 얇은 접시에 담긴 붉은 수프 뿐이었지. 나는 나의 가늘고 긴 주둥이 때문에 한입도 먹지 못했지. 분명히 여우는 속으로 웃고 있었지. 그리고 나에게 오히려 성의를 무시하고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말했어. 나는 다음날 우리 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했지. 나는 우리 집을 방문한 여우에게 목이 가느다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내 놓았지. 물론 여우는 한입도 먹지 못했지. 나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여우를 책망했지만 여우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어.”
어린왕자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래서 여우가 다시 초대했구나…”

황새가 말했다. “내 생각엔 여우가 나에게 다시 복수를 하려는 것 같아.”
어린왕자는 말했다. “그렇지 않아. 여우는 며칠 간 속상했데. 그러다가 곧 자신도 황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화해를 하기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고 황새가 방문해 맛있게 먹기를 바라고 있어.”
황새가 말했다. “정말이니…”

어린왕자가 말했다. “음식을 준비하는 여우는 행복해 보였어.”
황새가 말했다. “나는 나를 초대해준 여우를 위해 좋은 선물을 준비해야 겠다.”
어린왕자가 말했다. “행복한 저녁식사가 될거야.”  
<송의용 / 뉴욕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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