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옴부즈맨공동체가 보수라고?

런던타임즈 | 입력 : 2012/03/17 [01:39]
▲  김형오 박사
시민옴부즈맨 공동체를 10년 넘게 이끌고 있는 김형오 박사를 만나 보았다. ‘모바일 신문고’를 운영하면서 권력에 맞서 사회의 각종비리를 고발해 온 그가 자신의 성향을 보수라고 밝힌 것이 의외였다. 그의 특이한 인생여정을 살펴보면, 그는 아무래도 보수보다는 진보 인물로 분류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에 상경하여 막노동을 하고 엿장사, 구두닦기, 신문팔이를 하면서도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방통대, 서울시립대등을 전전하며 공부를 해서 만년에 우여곡절 끝에 충북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시청을 끝으로 공직을 명예롭게 마감한 그의 공직생활 20년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광주항쟁이 발발했을 때 공무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바른 말을 하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15일간 구류를 살다 석방된 일도 있었다. 이 일로 그는 공직사회에서 “재야인사”라는 닉네임으로 통했다고 한다.

20년간 공무원으로서 수 많은 민원들을 처리했던 그는 퇴직 후, 셰계 최초의 NGO 옴부즈만제도인 “시민옴부즈맨공동체”를 창설했다. 그는 2000년 행정안전부로부터 등록을 받은 후, 소외계층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전액 무료로 이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운영자금을 위해 낮에는 강의와 상담으로, 밤에는 집에서 운영하는 해장국집에서 서빙을 해 왔다고 털어 놓았다. 그가 지금까지 이 단체에 투자한 금액만 3억여 원이 된다고 한다. 이 단체의 실적은 고충상담, 지원, 대행 25,000건, 모바일신문고 사진민원 15,000건, 칭찬꽃바구니 300점, 서울시청 광장 사진민원 전시회5회, 고양시 킨텍스 사진민원 전시회6회 등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활동의 이면에 그의 삶 자체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아내의 외도에 수 차례에 걸쳐 설득하고 용서하기를 반복했지만, 결국엔 아내의 완강한 이혼요구에 마지못해 도장을 찍어 줄 수 밖에 없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현재 일산에 어느 조그만 산자락에 남의 문중 땅을 빌려 9.9평의 옛 농가주택을 수리하여 살고 있으며, 자신의 총 재산은 2000만원이라는 것을 부끄러움도 없이 밝혔다. 

이런 그가 자신을 가르켜, “추진하고 있는 일들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기에, 오히려 보수로 분류될 수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극우는 반대한다”고 하면서 선을 그었다. 엄밀한 스펙트럼으로 분류하면 중도 보수라는 것이다. 

집단민원을 해결하려다가 조폭들에게 폭행을 당해 갈비뼈가 골절되기도 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자신에게 쏠린 왜곡된 시각이라고 털어 놓았다. 특히 ‘이혼남’이라는 멍에가 가장 힘겨운 짐이라고 토로하면서,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사회적 편견 추방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할 시급한 과제”라고 흡사 민원인처럼 힘주어 말했다. 

타인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해 주는 일을 하는 그가 정작 자신의 고충은 스스로 풀기가 어렵다며 하소연을 하는 그에게서 한 작은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걸맞지 않게 큰 포부에 대한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런던타임즈 www.londontime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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